빼앗긴 공간, 밀려난 사람(2)

교육부 단협 7개월 만에 “방 빼”···사무실 빼앗긴 장애인 교사들

윤기은 기자

②장애인 교원 노동조합

지난달 29일  ‘함께하는 장애인 교원 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이 사무실에 있던 접이식 침대를 밖으로 옮기고 있다. 장교조 제공

지난달 29일 ‘함께하는 장애인 교원 노동조합’ 소속 교사들이 사무실에 있던 접이식 침대를 밖으로 옮기고 있다. 장교조 제공

정부지원으로 임대료 충당한 사무실
올해부터 예산 삭감돼 보금자리 상실
이주호 장관 “협력적 파트너”라더니
교육부 “예산 삭감, 단협 위반 아냐”

지난달 29일 오후 9시쯤, 장애인 교사 5명이 서울 중구의 한 공유사무실에 모였다. 노트북, 문자 통역을 위한 빔프로젝터, 지체장애인 선생님이 쉬던 접이식 침대 등 물품을 밖으로 옮겼다. “쫓겨나게 되니 난생처음 당근 거래를 해보네요.” 시각장애인 교사 김헌용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이날은 장애인 교사들의 노조 ‘함께하는 장애인 교원 노동조합’(장교조)이 사무실에 입주한 지 99일째 되는 날이자, 퇴거하는 날이었다.

교육부와 공식 단체협약을 맺은 지 7개월 된 장교조는 2024년 새해 첫날인 1일부터 노조 사무실을 사용할 수 없다. 올해 교육부 관련 예산이 삭감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교육부 예산에는 ‘단체교섭 및 건전 노사관계 구축’ 항목에 4억6300만원이 배정됐다. 장교조는 올해도 이 예산 항목이 존속한다는 걸 전제로, 이 가운데 약 1억2000만원을 사무실 임차료 등으로 지원받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교육부는 올해 예산안에서 ‘단체교섭 및 건전 노사관계 구축’ 항목을 없앴고, 이는 국회에서 확정됐다. 사유는 ‘지출 구조조정’이었다. 이에 지난 3개월여간 정부지원금으로 매달 약 600만원을 임대료로 내온 장교조가 올해부터 사무실을 못 쓰게 된 것이다.

장애인 교사 모임에서 시작된 장교조는 장애 교사들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19년 결성됐다. 이날 기준 전국 약 200명이 가입해 있다. 2020년 8월부터 약 3년간 교육부와 스물세 차례에 걸쳐 교섭을 벌여 시각장애인용 교과서와 지도서 배부, 청각장애인 교사용 문자·수어통역 서비스 제공,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 장애인 접근성 개선, 장애물 없는 학교 환경 조성 등 내용을 단협에 담았다. 단협에는 인사와 연수에서 장애인 교사가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사항도 명시됐다.

‘함께하는 장애인 교원 노동조합’ 퇴거 작업이 진행된 지난달 29일 소속 장애인 교사 4명이 서울 중구에 있는 사무실에 앉아 있다. 장교조 제공

‘함께하는 장애인 교원 노동조합’ 퇴거 작업이 진행된 지난달 29일 소속 장애인 교사 4명이 서울 중구에 있는 사무실에 앉아 있다. 장교조 제공

노조 사무실은 단협에 담긴 내용을 실현하고, 조합원들이 일터에서 마주하는 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장소였다. 장애인 교원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노무 강의, 고충 상담, 연수, 장애인 교원 간 교류 등이 교실 하나 크기 남짓한 이곳에서 이뤄졌다.

적절한 사무실을 찾는 과정도 지난했다. 장교조 조합원들은 서울 지역 공유사무실 20여 곳을 돌아다닌 끝에 지난해 9월22일 사무실에 입주했다. 시각·청각 장애인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조용한 곳, 휠체어를 타는 지체·뇌병변 장애인이 오갈 수 있는 곳 등 다양한 조건을 충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헌용 장교조 위원장은 통화에서 “내밀한 얘기가 많은 고충 상담은 조용하고 안전한 곳에서 진행돼야 하는데 그런 곳이 없어진 것”이라며 “장애인 교원 맞춤 연수도 이곳에서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수, 상담, 교류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노조의 안정적 운영이 저해될까 우려된다”며 “차별받던 선생님들과 함께 학교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간다는 자부심으로 활동해왔다. 예산 삭감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은 교육부에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6월2일 단협 체결 발표식에 참석해 “우리 교육의 진정한 변화를 이끄는 힘은 현장 선생님들에게 있는 만큼 선생님들이 교육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교실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면서 “이번 단협 체결을 계기로 교육부와 장교조가 협력적 파트너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초석을 마련하게 됐다”고 공언했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해 6월2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열린 ‘교육부-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2020 단체협약 체결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해 6월2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열린 ‘교육부-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2020 단체협약 체결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장교조 측은 이번 예산 삭감은 단협 위반이라고 했다. 교육부와 장교조가 맺은 단협 제10조는 ‘교육부는 법령, 판례 등과 예산의 범위 내에서 합리적 기준을 고려해 노동조합 사무실 등을 지원하도록 노력한다’고 돼 있다.

교육부는 예산 삭감이 위법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장관은 지난해 11월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예산 사항은 단협에 규정돼 있더라도 탄력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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