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시간 노동 관행’ 여전히 심각…“주 52시간 상한 필요”

유선희 기자

헌재 합헌 판단 배경·의미

<b>‘주 52시간’ 지켜주는 일자리는 어디에</b>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주 52시간 근로제’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성동훈 기자 zenism@kyunghyang.com

‘주 52시간’ 지켜주는 일자리는 어디에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주 52시간 근로제’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성동훈 기자 zenism@kyunghyang.com

노동시간 길어지면 산재 위험 등 복합적 문제 유발 ‘전제’
윤 정부 69시간제 추진 등 노동 유연화 방향에 영향 주목

헌법재판소가 주 52시간 상한제가 합헌이라고 판단한 배경에는 한국의 장시간 노동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헌재는 4일 공개한 결정문에서 장시간 노동 관행을 깨기 어려운 사회 구조, 사용자와 노동자가 대등하게 협상하기 어려운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주 52시간 상한제의 강제 적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사자 간 합의를 앞세워 법정 근로시간 유연화를 추진 중인 윤석열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주 52시간 상한제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이 합헌이라고 판단한 헌재 결정문을 보면, 헌재는 장시간 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안전은 물론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등 복합적인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고 전제했다. 노동자에게 휴식·회복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아 건강에 위해 요소가 되고, 노동시간이 늘수록 산업재해 위험도 커진다고 했다. 헌재는 “우리나라는 장시간 노동을 해결하기 위해 1989년과 2003년 두 차례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법정 근로시간을 1주 40시간으로 단축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전체 취업자의 연간 실근로시간이 196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중 최상위권”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장시간 노동 관행’ 여전히 심각…“주 52시간 상한 필요”

헌재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자율적 합의를 존중하는 게 원칙이라면서도 헌법 제32조 제3항이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한 점을 짚었다. 개별 노동자가 사용자에 비해 경제적·사회적으로 열위인 경우가 많으므로 국가가 ‘인간의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연장근로 상한을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 국가들도 있다면서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주목했다. 한국의 장시간 노동 문제는 사용자가 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규직 연장근로로 목표 생산량을 채우고, 노동자는 소득 증대를 위해 연장근로를 선호하는 구조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이 같은 상황에서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연장근로의 상한에 대한 예외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상한이 적절한 수준에서 제한돼 실근로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는 1주간 근로 한도를 60~69시간까지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당사자 간 합의’하에 진행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헌재는 상한제를 강제하지 않고 당사자 간 합의에만 맡겨 뒀을 때 실근로시간을 줄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추가 수당을 받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원한다는 주장에 대해 헌재는 “저임금 문제는 단순히 법정 근로시간 외 근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최저임금 인상 등 시급 근로자의 보호나 기본급과 수당 사이의 비중을 조정하는 등의 임금체계 개편 등을 통해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노동환경이나 시간 조건에 대한 교섭력이 없는 노동자들은 주 52시간 상한제를 법률로 규제하지 않으면 건강과 생명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며 “이번 헌재 결정이 장시간 노동정책 방향으로 가는 정부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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