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구함 : 어느 피고인의 변론

“잘못된 제도가 미등록 체류로 내몰아···강제단속은 해법 아니다”

조해람 기자
노동자의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4월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2023 세계노동절_강제노동철폐!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기숙사 보장 등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노동자의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4월30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2023 세계노동절_강제노동철폐!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기숙사 보장 등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42만3000명.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다.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230만명의 18.4%는 미등록 체류자다. 2014년 처음 20만명을 돌파한 뒤 계속 늘고 있다.

이들은 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됐을까. 전문가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사업장 변경 제한’을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이주노동자 일터에서는 폭행·폭언, 저임금·고강도 노동, 가건물 숙소 등 인권침해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사업장을 옮기려면 사업주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고명숙 ‘이주와가치’ 대표는 14일 “최저임금을 안 지키고 임금체불 해도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 동의를 안 해준다”고 했다.

중대한 인권침해를 당하면 사업주 동의 없이도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지만 인정기준이 높고 증명이 어렵다. 횟수도 3회로 제한됐다. 김희정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구지부 성서공단지회장은 “잘못된 법과 제도로 인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일손이 부족하다’며 이주노동자 규모를 전에 없이 늘리고 있다. 올해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도입 규모는 16만5000명으로 역대 최대치다. 한국에 많이 오길 바라면서도 열악한 처우는 개선하지 않고, 사업장을 이탈하면 국외 추방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대구의 한 영세 제조업체 관계자는 “이미 지역은 이주노동자 없이는 생산이 돌아가지 않는다”며 “내쫓기만 하는 게 맞는 일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부의 단속도 강화되고, 강제단속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 11월에는 한 공장에서 단속반이 여성 이주노동자의 목을 팔로 졸라 끌어내는 영상이 온라인에서 논란이 됐다. 고 대표는 “기간을 정하고 단속하던 예전과 달리 지난해부터는 매일같이 단속이 이뤄지고 있고, 단속 장소도 공장에서 예배당이나 출근길 등 일상의 공간으로 확장됐다”고 했다.

김 지회장은 “일자리와 제도가 잘 갖춰져 있었다면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단속·추방의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미등록 체류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는 법과 제도를 바꾸고, 단속·추방 중단과 합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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