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노동자들 “최임마저 빼앗겠다? 옳지 않아”
“안 그래도 우리 고령노동자들은 ‘최저인생’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최저임금마저 빼앗겠다고요? 나라가 앞장서서 임금을 깎겠다고요?”
이화여대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이애경씨(65)는 최저임금 언저리의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 그의 임금은 매년 결정되는 최저임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는 최근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이 노인을 최저임금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건의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씨는 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물가가 폭등해서 실질임금이 줄었는데 정부는 최저임금을 고작 240원만 올렸다”며 “(건의안은) 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빼앗고 노인노동자들의 생존을 짓밟는 짓”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의 ‘노인 최저임금 제외’ 건의안 발의에 고령노동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노년유니온, 노년알바노조준비위원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저임금 차별 적용 서울시의회 건의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2022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은 275만6000명 중 45.5%(125만5000명)가 60세 이상이었다.
윤기섭 국민의힘 서울시의원 등은 지난 2월5일 ‘노인 일자리 활성화를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발의했다. 최저임금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적용제외 대상에 고령노동자를 포함해야 한다고 국회와 노동부, 서울시에 건의하자는 내용이다. 국민의힘이 서울시의회 110석 중 76석을 차지한 만큼 해당 건의안은 시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노인 최저임금 제외’는 몇 차례 시도됐지만 한 번도 실현된 적 없었다. 여론의 반발이 컸고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017년 연령별 차등적용을 검토 한 뒤 ‘타당하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최임위는 차등적용이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이고, 해외 사례가 거의 없으며, 고령자 고용은 고용정책으로 해결할 일이라고 봤다.
최임위가 지난해 발주한 연구용역 ‘2023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 보고서를 보면, 최저임금제를 시행 중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22개국 중 고령노동자 최저임금 차등적용 국가는 칠레(18세 미만 노동자와 65세 초과 노동자에게 법정 최저임금의 74.6% 지급) 뿐이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이날 “한국 사회가 공적으로 해결해야 할 노인의 빈곤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에 고령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한다”며 “사회보장제도를 보다 확장하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그 어떤 건의안도 정책적 대안도 마련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최저임금만 깎자는 것이 과연 서울시의원으로서 옳은 처사인가”라고 했다.
이들은 건의안이 정부·재계의 ‘최저임금 차등적용’ 주장과도 맞닿아 있다고 봤다. 허영구 노년알바노조준비위원회 위원장은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가사·돌봄노동자들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언급했고, 매년 최저임금 결정시기만 되면 경제계는 업종별 차등지급을 주장하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서울시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런 건의문을 발의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있는 최저임금법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건의안을 통과시키려 하다니 가당치도 않다”며 “최저임금 지역별, 업종별, 연령별 차별 적용 시도하는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규탄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