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물러날 수 없는 이유 독자님, 안녕하세요. 이번 주의 큐레이터 최미랑 기자입니다.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하는 기사를 좋아해요. 우크라이나 전쟁. 처음에 너무나 놀랐다가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키워드가 아닌가 합니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24일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어요. 이렇게 시작한 전쟁이 곧 만 1년이 됩니다.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던 시민들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어요. 그 이야기를, 박은하 기자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들어가 직접 듣고 왔습니다. 일상과 너무 먼, 소설 혹은 영화 같은 장면들을 그려 보느라 저는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기사를 읽었어요. 군인이 된 예능PD와 인권변호사. 전쟁은 이들의 삶과 마음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을까요. 약 7분 분량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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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일상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바꿨다. ☑️ 많은 이가 본업을 버리고 자원입대해 총을 들었다. 부당한 침략에 저항하는 마음이 죽음의 공포를 눌렀다. ☑️ 인권변호사이던 올레크는 두 다리를 잃었지만, 참전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타협 없는 승리와 정의롭고 평등한 우크라이나를 원한다. ☑️ 예능PD이던 니콜라이는 시민의 응원과 민간인 학살에 대한 분노를 동력으로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탱크를 갖춘 러시아 부대를 기적적으로 물리친 그는 죽음의 문턱을 넘고 또 넘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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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와 예능PD는 왜 총을 들었나 2023.02.22. 박은하 유럽 순회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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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선으로 향하는 기차와 돌아오는 기차 주변에는 늘 만남과 헤어짐이 있다. 소총을 어깨에 멘 한 군인이 연인과 헤어지기를 아쉬워하고 있다.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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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과는 거리가 먼 키이우에서도 병사는 어디에서나 눈에 띈다. 식당, 카페, 지하철, 버스터미널 등 일상 공간 어디에서나 군복 입은 이들을 만날 수 있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징집병과 자원병을 합쳐 약 90만명이 병력으로 동원됐다. 지난 1년 간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상자 수는 최대 10만명 수준일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병역에 대한 공포와 거부는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에서도 존재한다. 하지만 전쟁의 가장 참혹한 폭력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물러서지 않는 병사들 역시 적지 않다. 올레크 시모로스(25)와 니콜라이 코발(39)이 그런 이들이다. 전쟁은 변호사와 예능PD의 손에서 법전과 카메라를 빼앗고 총을 쥐여줬다. 오는 24일 러시아의 침공 1주년을 앞두고 이들이 군인으로서 겪은 지난 1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두 다리 잃었지만 나라는 지켰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있는 오베리흐 병원에 들어섰다. ‘오베리흐’는 우크라이나어로 ‘수호자’(Guardian)이란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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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군 복무를 하던 중 두 다리를 잃은 올레크 시모로스(25)가 지난 17일 키이우의 오베리흐 병원에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인권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변호사였던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24일 자원 입대했다. 키이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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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크는 이불을 머리맡에 말끔하게 개어놓고 정자세로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환자복 하의 아래 드러난 허벅지 절단면의 보랏빛 수술 자국이 꼭 전차 궤도 같았다. 손가락에도 마디마디 보랏빛 상처와 흉터가 그어져 있었다. 얼굴은 깨끗했지만, 앞니 하나가 빠져 있었다. 무어라 위로를 전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기자를 그는 담담한 미소로 맞았다. 인터뷰 중 전쟁 트라우마가 올 것 같으면 언제든 이야기를 중단해도 된다고 얘기했지만, 그는 괜찮다고 했다. 지난 1년간 벌어진 끔찍한 전쟁의 기억을 떠올리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시선을 돌리는 법이 없었다. 올레크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지방정부의 인권 정책을 모니터링하는 변호사였다. 우크라이나에서 대학생은 기초군사훈련만 받는 것으로 군 복무를 대신할 수 있다. 따라서 군 복무 경험이 없는 올레크는 우선 징집 대상이 아니었지만, 그는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전면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훈련소로 달려가 입대신청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는 “정말 긴 줄이었다”고 회상했다. 첫날은 무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돌려보내졌다. 입대하려고 몰려든 사람들이 무기보다 많았던 것이다. 끈질긴 기다림 끝에 그는 결국 소총을 지급받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시간 만에 키이우 외곽 도시 이르핀에 배치됐다. 맡은 임무는 보병 소총수. 전장에서 죽을 확률이 가장 높은 위치였다. 이르핀에 도착한 지 1~2시간 만에 러시아의 포탄이 비처럼 쏟아졌다. 군 경험이 없는 그가 처음 맞닥뜨린 실전이었다. 포탄에 맞지 않기 위해 하루종일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참호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는 “미친 숫자”였다면서, 러시아의 끊임없는 포탄 공세는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심리적인 공세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두렵지 않았냐고 묻자 올레크는 “두려웠다.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도시와, 나의 나라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보다 더 컸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종일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전쟁 발발 첫날 군 훈련소 앞에 모여들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을 되뇌었다. “우리는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독립과 국가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올레크는 말했다. 지난해 4월 이르핀을 비롯해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 러시아군이 물러가자 올레크는 돈바스 전선인 크라마토르스크 인근 부대로 재배치됐다. 전선은 여전히 참혹했다. 가족이나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휴대전화를 사용했다가는 위치를 들킬 수 있기 때문에 참았다. 그는 “그것이 러시아군과 우리가 다른 점”이라며 “나와 동료를 위험에 빠뜨릴 순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병사들의 잦은 휴대폰 사용 때문에 도·감청에 걸려 군 막사 위치가 노출된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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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 군복무를 하던 중 두 다리를 잃은 올레크 시모로스(25)가 지난 17일 키이우의 오베리흐 병원에서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키이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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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를 잃는 사고는 지난해 10월 찾아왔다. 그해 10월 20일 아침, 평소처럼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차량을 운전하던 중 대전차 지뢰를 밟고 말았다.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고, 그는 곧바로 정신을 잃었다. 하루 만에 깨어나니 드니프로의 병실이었다. 손, 얼굴 등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특히 다리에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꽉 묶은 지혈대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두 다리는 잘려져 있었다. 아버지가 옆에서 참담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러시아군 침공 첫날부터 군 복무 중인 아버지는 군에서 지뢰 매설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올레크는 아버지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에 꽂힌 호흡장치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키이우에서 드니프로로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에 위안이 됐지만 그들이 받을 충격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올레크는 “다행히도 우크라이나에서는 누구나 이런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병원에서 회복과 재활훈련을 병행하고 있다. 전선에서 들려오는 잔인한 소식에 그는 누구보다도 마음이 아프다. 본인이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의 평화협상에 대한 이야기에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올레크는 “지금 러시아는 나치 독일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인들은 지금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올레크의 병상에는 크레파스로 그린 공룡 그림이 붙어 있다. 친구의 여섯 살 난 아들이 그려준 그림이다. 아이 아빠인 친구 역시 현재 군 복무 중이다. 그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자신이 많은 시민들의 응원 속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올레크는 “나에겐 더 중요한 미래가 있기 때문에 과거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면 일단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리고 인권변호사로서 꿈꿨던 사회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더 좋은 삶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사회가 좀 더 정의롭고 평등하길 바랍니다. 저는 그런 걸 가능하게 하는 일들을 하고 싶습니다.” 탱크를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는 예능 PD 노보라드 볼린스키, 리시찬스크, 이지움, 바흐무트…. 니콜라이 코발(39)이 지난 1년 동안 거쳐온 전장터들이다. 키이우 방어전부터 하르키우 수복전까지, 우크라이나 전황의 주요 변곡점마다 그가 있었다. 지난 18일 키이우의 중동식 레스토랑에서 만난 니콜라이는 군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강건한 표정과 절도 있는 태도가 영락없는 베테랑 군인의 모습이었지만, 사실 그의 원래 직업은 방송국 예능PD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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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두 번째 군 생활을 하게 된 니콜라이 코발(39)이 지난 18일 키이우의 한 식당에서 자신이 겪은 전쟁 1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키이우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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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의 전쟁은 2022년 2월 24일이 아니라 2월 20일에 시작됐다. 우크라이나에서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진 날이다. 군 복무 경험이 있는 그는 다가올 전쟁을 예감하고 17일부터 일찌감치 짐을 싸 놓았다. 2월24일 새벽 3시부터 시작된 미사일 폭격 소리에 잠을 깼다. 벨라루스와의 접경 지대에 있던 그의 원소속 부대가 사실상 러시아군에 전멸당해, 새로 편성되는 부대에 합류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문제없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문제가 있었습니다. 키이우에서 약 220㎞ 떨어진 노보라드 볼린스키의 부대에 가야 하는데, 고속도로가 피란 차량으로 가득 차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그 순간 누군가가 붓과 페인트를 가져와 미니버스에 임시방편으로 국방부 마크를 그려 넣었다. 이게 통할까 싶었는데, 놀랍게도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다. 국방부 마크를 본 시민들이 자기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일제히 순서를 양보해 길을 터준 것이다. 첫 전투를 앞둔 그에게 시민들에게 받은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은 엄청난 힘이 됐다. 그러나 부대에 도착한 후 마주친 현실은 암담하기만 했다. 부대원 30명 중 군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를 포함해 단 2명뿐이었다. 그는 그때 영화 <300>에 나오는 전투사들처럼 ’존엄한 마지막 싸움’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급조된 부대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임무는 민간인들이 피란을 떠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첫 전투에서 맞닥뜨린 건 러시아 탱크 16대였다. 이쪽은 보병과 포병뿐이었다. 니콜라이는 “솔직히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 “탱크에서 포를 쏘는 속도는 매우 빠르기 때문에 보병, 포병들은 알아차릴 새도 없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 양측 모두에게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탱크로 밀어붙이면 보병들은 도망을 가야 하는데, 앞쪽의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도 누구 한 명 물러서지 않고 정위치를 지킨 채 수류탄을 던지며 전진한 것이다. 니콜라이는 당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싸웠다”고 전했다. 놀란 것은 니콜라이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때 “동료 중 누군가 러시아군이 ‘젠장,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기세에 질린 러시아군은 진격하지 못했다. 니콜라이는 그때 처음으로 “우리는 생각보다 강하고, 적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결국 러시아군은 4월 초 키이우 인근 전선에서 철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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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은 전세를 재정비해 돈바스로 병력을 집중했다. 우크라이나군도 병력을 돈바스로 대거 보내면서 니콜라이도 그곳으로 갔다. 그곳은 키이우 인근과 분위기가 달랐다. 키이우의 시민들은 우크라이나군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며 위험을 무릅쓰고 러시아군의 위치 정보까지 몰래 보내준 데 반해, 8년째 전쟁에 시달리던 돈바스 주민들은 우크라이나군을 보고서도 냉담했다. 어느 편이든 전쟁에 아예 엮이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돈바스 주민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 그저 군인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느 쪽이든 일단 군대가 나타나면 포격과 폭격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시작된 돈바스 전쟁으로 인해 주민들 사이에서는 냉소와 환멸이 번지고, 러시아군의 전면 침공 이후로는 지역 전체가 초토화되고 있는 것이 돈바스의 현실이었다. 그는 “그들도 우크라이나 국민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군인으로서는 ‘우리를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왜 목숨을 내던져야 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무렵 돈바스 전선에까지 들려온 ‘부차 학살’ 소식은 그의 모든 걸 바꾼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러시아군 점령 지역에 살고 있던 부대원 동료의 아내와 세 살, 다섯 살 난 아이들도 피란 도중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 발견됐다. 부대를 찾아온 경찰에게 그 소식을 들은 니콜라이는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며 “전쟁에 대한 생각이 다시 한번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군인들은 승리를 더욱 강렬하게 원하게 됐다. 일반 시민들도 ‘어떠한 협상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점에서 완전한 이정표”라며 “우리에게 이제 다른 길은 없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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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방에 급조해서 마련된 훈련장에서 설상 위장복을 입은 우크라이나 군인이 저격용 소총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 KISH KIM·다큐앤드뉴스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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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는 이후 돈바스 지역을 떠나 지난 8월 하르키우 수복작전에 참여했다. 공교롭게도 노보라드 볼린스키에서 교전했던 러시아 부대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 러시아 쪽에는 10대의 탱크가 있었고, 우리는 또 보병이었습니다. 우리 부대는 100명 중 30명만 살아남았지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투 사흘째가 되니 러시아군은 탱크를 잃는 것이 두려워 물러났죠. 결국 우리가 다시 해냈습니다.” 그는 하르키우에서 러시아군을 물리친 경험은 우크라이나 국경 내에서 러시아군을 쫓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무기만 갖추면 우크라이나군은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병력이 더 많으니까 우리에게는 정말 더 많은, 많은 무기가 필요합니다.” 📝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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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 기자는 우크라이나에서 계속 기사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칠까 봐 포탄 조각을 모은다는 어린이, 러시아군의 민가 폭격으로 일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시민, 전사한 연인의 묘지를 찾는 여성...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여러 차례 총을 든 군인으로부터 신분증 검사를 받고 있다고 해요. 포격당한 마을에서도 아이들은 놀이터를 찾아 신나게 논답니다. 하지만 슈퍼마켓에서도 버스에서도, 어른에게 보채는 아이가 보이지 않는 게 인상적이라고 전해왔어요. 다가오는 봄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상대방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벌일 거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무기를 지원할 방법을 검토하고 있어요. 러시아와 가까운 유럽 국가들엔 이 전쟁이 남 일 같지만은 않은 상황입니다. '정찰 풍선' 사건으로 몹시 사이가 안 좋은 미국과 중국은 우크라이나 상황을 놓고 조금씩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요. 미국은 중국이 이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할까 봐 경계하고 있고, 중국은 지난 20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쟁 이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데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한 독자님이 많이 계실 것 같아요. 정치, 외교, 국제관계에 대한 질문도 적극적으로 남겨주시면 관련 콘텐츠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메일 하단의 '의견 남기기' 버튼을 많이 활용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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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소모적으로 끌어온 이 전쟁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국제부 정원식 기자가 상세히 살펴봤습니다. 확전 우려 때문에 무기 지원을 자제하던 여러 나라는 전쟁이 계속되면서 지원금을 늘려왔고, 이제 지원을 금기시하던 무기까지 우크라이나에 보내기로 했어요. 전쟁은 환경을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파괴합니다. 우크라이나 환경부가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있는데, 600종의 동물과 880종의 식물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고 해요. 토지의 3분의 1이 농업에 쓸 수 없을 만큼 훼손됐고요. 인류 역사상, 전쟁으로 발생한 환경 파괴를 이토록 상세하게 기록한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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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레터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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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터를 보고 더 찾아보니까, 오늘 올라온 기사에 성소수자 사실혼 사이에서 건강보험 피부양 자격을 인정할 수 있다는 고등법원 재판 결과도 나오고 확실히 사회가 변해간다는 게 체감이 되네요." 📝 화요일 오전 발송한 점선면 Lite <우리 이제 파트너예요> 레터에 대해 익명의 독자님께서 위 피드백을 남겨주셨어요. 레터를 보내드린 바로 그 날 오후, 무척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거든요! 법원은 동성 커플이란 이유로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고 명시했어요. 동성 커플의 사회보장제도 상 권리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입니다. 대법원 판결까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큰 한 걸음을 내딛은 것은 틀림없어보여요. 점선면팀은 지난 화요일, 1회 이벤트 당첨자들께 선물을 발송해 드렸습니다. (잘 받으셨나요?) 책과 문구를 하나씩 직접 포장하고 손편지를 쓰면서 무척 설렜습니다. 선물이 마음에 드셨길 바라요. 구독자님들을 위한 또다른 이벤트도 차차 준비해 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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