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결론을 내린다면서요 독자님, 안녕하세요. 드디어 금요일이에요! 이번 주 저의 큐레이션은 후쿠시마 오염수 후속 기사로 마무리합니다. 애매한 상황을 자초한 정부를 비판한 칼럼이에요. 우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 모니터링을 믿을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본은 유럽연합에 수입 규제를 없애라고 요구하기 시작했고요. 한국은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였어요. 정부가 이전에 밝힌 입장을 따라가면 후쿠시마산 수산물은 안전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거든요. 과학 담당 이정호 기자가 정부의 행보를 비판했습니다. 칼럼은 2분 분량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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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섞인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보다 낮다고 확인되면 방류를 막을 수 없다고 본다. ☑️ 그러면서도 후쿠시마 주변 해역의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는 유지하겠다고 한다. ☑️ 정부는 '과학'을 강조했는데, 이런 대응은 과학적 접근이 아니다. 일본은 이런 자가당착을 더욱 파고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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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와 '과학' 2023. 04. 11. 이정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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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WCA가 지난 4월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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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科學)이란 뭘까. 사전에는 ‘보편적인 진리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라고 써 있다. 좁게는 자연과학이고, 넓게는 모든 학문을 가리킨다. 무엇이 됐든 과학의 기본은 논리적인 접근이다. 요즘 윤석열 정부에서 ‘과학’이라는 표현이 부쩍 많이 등장한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는 일본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오염수의 안전 여부를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방식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있다. 한마디로 일본이 오염수를 바다에 버린다고 하는데, 정말 그래도 될지를 과학적인 잣대로 검증하겠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오염수에 섞인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하여서 안전하다고 확인되면 방류를 막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녹아 있다. 정부의 또 다른 태도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오염수가 방류돼도 현재 시행 중인 후쿠시마 주변 8개현에 대한 수산물 수입금지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과 총리, 여당이 한목소리다. 이상한 일이다. 오염에서 자유로운 ‘안전한 바다’에서 ‘안전한 수산물’이 사는 건 과학적이며 논리적인 결론이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에 나선다면 거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방류를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는 한국 정부의 양해 또는 이해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 그곳은 안전한 바다로 인정돼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그런 바다에서 잡힌 수산물은 정작 수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건 윤석열 정부가 스스로 강조하는 ‘과학’과 부합하지 않는 태도다. 차라리 “과학적으로 살펴봤더니 기준치 이하의 오염수는 방류돼도 큰 문제가 없다. 수산물 수입 재개를 검토하겠다”면서 대국민 설득에 나서는 편이 솔직하고 담백하다. 이런 태도는 대일 관계를 풀겠다는 생각에 오염수 방류에는 ‘과학’을 거론하며 유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수산물 수입 재개까지 추진하기에는 국내 여론이 부담스럽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먹거리 안전은 국민에게 매우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이런 속사정을 이해해 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오히려 이 같은 자가당착을 집중적으로 파고들 것이다. 한국의 수산물 수입 재개는 원전 오염수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에 보여줄 만한 확실한 홍보 소재이기 때문이다. 아직 해결 방법은 있다. 아예 오염수가 바다로 안 나오게 하면 된다. 그럼 오염수의 유해성을 두고 설왕설래할 일 자체가 사라진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 더 많은 오염수 저장탱크를 짓도록 압박해야 한다. 일본은 오염수 처리 방법 중 가장 비용이 낮은 해양 투기를 선택했지만, 그건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국제해양법재판소에 가처분 신청을 해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일단 지연시키는 일을,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 오염수 방류 대응을 두고 모순적인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것보다 쉽고 간명한 방법이다. 깔끔하고 명료한 것, 그게 과학이다. 📝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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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해도 '과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 독자님은 점선면팀에 이런 주장을 담은 기사를 따로 보내기도 하셨어요. 이렇게 주장하는 쪽은 현재 우리 정부의 대응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데는 '과학적이지 않은' 막연한 불안감이 반영됐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실'이 사람들을 찜찜하게 만든다는 점도 분명합니다. 그 사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예산 분담률을 보면 일본이 세계 세 번째로 크다는 점, 지금처럼 육지에 보관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데도 굳이 방류하겠다는 점 등입니다. (오염수 문제를 다룬 레터에서 '정화했다는데 괜찮지 않나?' '데이터가 없는데 어떻게 믿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런 측면을 입체적으로 다룬 바 있어요.) 이정호 기자는 깔끔하고 명료하게 문제를 풀 해법을 제시했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상황은 애매하고 모호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커 보여요. '원전 오염수를 버려도 바다는 안전하지만, 그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는 안전하지 않다'는 결론을 당분간 안고 가야 할 것 같은데요. '과학' 운운하며 명백한 기준선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 정부가 그 애매모호함도 감당해야 하겠죠. 미국 외교와 정치에 수십년 동안 영향력을 행사한 헨리 키신저가 쓴 <중국 이야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정치인의 수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모호한 것을 관리하는 데서 드러난다." 우리 정부가 앞으로 이 오염수 사태를 어떻게 관리할지 궁금합니다. 또 소식 전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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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이 거세지기 시작할 무렵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개봉했습니다.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고베 대지진 등 일본의 역대 재난을 소재 삼아 상상력을 발휘했죠.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에서 일본이 자신을 절대적 피해자로만 인식하는 한계를 지적합니다. "정해진 답만을 찾는 사람들은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심지어 새로운 규칙을 찾거나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난감할 것이다." 이종필 교수가 설정된 조건에서 답을 찾는 데만 익숙한 풍토를 비판했습니다. 스스로 조건을 설계하는 능력의 부재, 왠지 후쿠시마 대응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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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가 성장을 추구하지 않던 시점이 있었나요? 성장 중독된 이 사회가 무섭게 느껴지면서도, 성장에 대한 적지 않은 비판 담론이 정말로 인류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하는 회의감이 들어서 질문 남깁니다. 제가, 그리고 우리가 비판하는 그 지점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그 과학 기술은 탄생되어 있고 탄생 이후 그것을 어떻게 다룰 지에 대한 방향성을 논하는 이 굴레를 우리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하는 약간의 무기력한 질문을 남기게 되네요." 📝 "박백 독자님께서 지난 4월12일 점선면 < 우리는 왜 달에 갈까요?>를 읽고 남겨주신 질문이에요. 박백님께서 느낀 회의감과 무기력은 저 역시 느꼈던 터라 답변이 쉽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해 볼게요. 성장 지상주의와 탈성장 담론에 대한 논문과 칼럼들을 참고했습니다. 박백님 말씀대로 성장의 논리는 인류 문명, 특히 서양 문명에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더 많이 생산하고, 더 좋은 소비를 하고, 더 크게 번영해야한다는 성장 개념이 생겨난 건 18~19세기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에요. 지금과 같은 성장 지상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만들어진 셈이에요. 지난번 소개한 칼럼에서도 다루었듯이, 자본주의는 영속적인 성장을 필요로 합니다. 잉여를 새로운 생산에 끊임없이 재투자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핵심이니까요. 그렇다면 탈성장은 산업 문명과 자본주의를 몽땅 파괴하지 않고선 이룰 수 없는, 환상 같은 목표인 걸까요? 탈성장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탈성장은 성장만이 최고의 가치라는 신화를 넘어, 덜 일하고 덜 벌어서 덜 소비하면서도 함께 더 잘사는 사회 경제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거예요. 지역 화폐나 기본소득처럼 우리가 이미 누리고 있거나 접해본 제도들이 하나의 실행 방법이 될 수 있죠. 물론 이런 이야기들도 너무 이상적이고 급진적으로 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솔직히 저도 그렇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성장이 멈춘 사회를 경험한 적 있습니다. 1990년대 일본은 10년 이상의 장기 침체에 빠져 연평균 1%대의 성장률에 머물렀죠. 당시 일본 경제·사회의 붕괴를 점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일본은 건재했습니다. 오히려 이 침체기가 가족과 공동체, 자연환경을 희생하며 경제성장에 몰입해 온 과정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도 있어요. 우주로 가는 길이 조금씩 트이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아직 무한 성장이 불가능한 유한한 지구에 살죠. 폭발적 성장의 대가인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삶을 바꿔놓고 있고요. 이러한 지속불가능성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실천을 고민할 때, 비판과 담론만 오가는 ‘무기력한 굴레’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탈성장사회론은 이미 공적 논쟁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거든요. 미래의 어떤 날에는 우주 개발과 착취를 위해 만들어진 과학기술이, 인류와 자연 모두의 ‘좋은 삶’을 위해 쓰일 수도 있겠죠. 사실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모르겠는 마음을 잊지 않고 계속 알아보고 고민해보겠습니다. 답변이 길어졌습니다. 모쪼록 도움이 되셨길 바라요!" *참고문헌: 조영준, <성장지상주의와 탈성장사회>, 2021 📬 "지방에는 빈집이 남아돌고, 수도권은 재건축 및 신도시 건설에 주력하고 있고, 빠른 대책이 세워지지 않으면 일본처럼 0원의 매매가에도 불구하고 매매가 이루어 지지 않을 지경에 이를 것 같네요. 10,000원 아파트가 여러모로 유의미한 성과를 내면 좋겠네요." (뉸뉴냔냐님) 📝 "4월13일자 점선면Lite <1만원 아파트>에 남겨주신 이야기예요. 지방과 수도권의 상반된 현실을 짚어 주셨어요. 지난 2월 22일자 점선면 <분당·일산 재건축, 나랑 무슨 상관일까?>편에서 1기 신도시 재건축 문제를 여러 각도로 다뤄봤는데요, 그때 분량 한계상 '1기 신도시 재건축이 수도권 집중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관점은 다루지 못 했습니다. 대신 1기 신도시 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비수도권으로 보낼 가능성이 높고, 인구 감소 시대가 다가오는데 용적률을 대폭 '튀기는' 재건축은 합당하지 않다는 점을 조명했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한번 읽어보시고 또 대화 나눠도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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