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무척 더워요. 독자님은 잘 이겨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이번 주 큐레이터 허남설 기자입니다.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한 지점을 건드린 기사를 즐겨 읽어요. 점선면팀이 일하는 곳은 서울 중구 정동이라는 동네에 있어요. 이 근처에는 캐나다 대사관이 있습니다. 한 달 전쯤 그 앞을 지나다가 '한국-캐나다 수교 60년'을 자축하는 배너 옆에 커다란 무지개색 천이 나란히 걸린 모습(프라이드기·아래 사진)을 보고, 퀴어축제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리고 예감했습니다. 머나먼 수교국도 축하하는 축제를 두고 이 나라는 또 얼마나 시끄러워질까. 우리 주변의 성소수자는 가장 가까운 공동체에서는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바다 건너 공동체와 오히려 더 가까워지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살아갑니다. 지난달 17일 대구에서 열린 퀴어축제에서 그랬고, 이어 지난 1일 서울에서 열린 퀴어축제에서도 그랬습니다. 오늘은 서울퀴어축제의 여러 장면을 담은 기사를 가져왔어요. 대화 곳곳에 퀴어축제의 요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는 링크를 걸어뒀어요. 기사는 약 3분 분량이에요. | |
☑️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015년부터 매년 사용한 서울광장 대신 을지로 일대에서 열렸다. 서울시는 같은 날 기독교단체가 서울광장을 사용하게 했다. ☑️ 기온이 34도까지 올랐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축제에 참가했다. 기독교·불교·천주교 등 종교단체와 외대부고·민족사관고 등 학생들이 부스를 운영했다. ☑️ 한 참가자는 "정체성을 숨기고 살았는데 용기를 얻고 싶어서 나왔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보고 공기가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
퀴어나라 피어나라 2023.07.02. 윤기은·김송이 기자 |
김규진씨(왼쪽부터)·김세연씨, 킴씨·백팩씨 부부가 1일 서울 을지로 일대에서 열린 제24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결혼식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엠네스티 제공 |
"그냥 결혼이야!"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난 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일대 도로 한복판에서 특별한 '결혼식'이 열렸다. 하얀색 옷을 맞춰 입은 김규진씨(31)·김세연씨(34), 킴씨·백팩씨(모두 활동명) 등 두 동성 커플이 결혼 행진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무지개색 끈이 달린 부케가 허공에 던져지자 시민들은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부케가 넘겨진 뒤 행진 대열에 앞장선 두 커플은 서로에게 키스했다. 이달로 임신 8개월을 맞은 김규진씨를 향한 축하도 이어졌다. 김씨는 지난달 2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임신 사실을 알렸다. 김씨 부부는 2019년 5월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같은 해 11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해 12월 벨기에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에 성공했다. 국내에서 동성 커플의 임신이 공개된 건 처음이다. 김세연씨는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같이 있고 싶은데 출산휴가를 받을 수 없다"며 "동성결혼 법제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동성 커플인 백팩씨도 "8년가량 동거한 데다 양가 가족끼리 왕래하는 사이인데도 병원에서 서로 보호자가 되지 못한다"며 "동성 커플을 위한 결혼 제도가 생기면 정식으로 식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 결혼식 퍼포먼스는 올해로 24회를 맞는 서울퀴어문화축제(퀴어축제)에서 인권단체 국제엠네스티 주관으로 열렸다. 퀴어축제는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년간을 제외하고 지난 2015년부터 매년 서울광장에서 열렸으나 올해는 서울시가 기독교단체 CTS 문화재단 행사에 광장 사용을 허가한 탓에 을지로로 장소를 옮겼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퀴어나라 피어나라'를 주제로 이번 축제를 열며 "서울시가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한다면, 우리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서울퀴어퍼레이드 개최를 통해 불허한다"고 했다. | |
지난 1일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외국인들. 김송이 기자 |
기온이 34도까지 올랐지만, 행사장은 다양한 성별과 국적, 나이대의 시민들로 북적였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단체에서도 부스를 설치해 성소수자와 연대했다. 행사장 가운데 성중립 화장실도 마련됐다. "자유의 태양이 된 것 같습니다." 올해 처음 퀴어축제에 참가한 손성호씨(43)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손씨는 "지금까지 퀴어축제에 비친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선뜻 참가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며 "정체성을 숨기고 살았는데 용기를 얻고 싶어서 나왔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보고 공기가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외대부고, 민족사관고 등 6개 학교 재학생들이 운영한 부스에서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적시한 각 시도별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서명 운동을 벌였다. 고등학생 류한선군(18)은 "동성애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인데 사회에서 억압당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서울시의 서울광장 사용 불허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봉준영씨(51)는 "퀴어축제는 성소수자에게는 나 자신을 숨기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숨통과도 같은 행사"라며 "시청광장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곳인데 '안 볼 권리'를 주장하면서 밀려나 안타까웠다"고 했다. | |
지난 1일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찾은 김경한씨(왼쪽부터), 김나경씨, 박미란씨 가족. 윤기은 기자 |
가족 단위로 행사에 참여한 참가자도 있었다. 박미란씨(57), 김경한씨(57) 부부는 딸 김나경씨(27)의 권유로 국내 퀴어축제에 처음 참석했다. 아버지 김씨는 "퀴어 축제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우리 세대가 청년일 때보다 지금 세대가 자유로운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좋다"고 했다. 오후 2시 환영무대에서는 인권단체 활동가, 종교 지도자, 각국 대사의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축복기도를 했다가 교단에서 징계를 받은 이동환 목사는 "우리가 늘 모이던 서울광장이 아닌 을지로에서 모이게 됐다. 기독교 혐오 세력과 오세훈 시장의 합작품"이라며 "그럼에도 진짜 사랑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4시30분부터 을지로에서 삼일대로를 거쳐 종각역까지 행진했다. 주최 측은 이번 퍼레이드에만 5만명, 14개 대사관이 참가하는 부스 행사와 영화제 등을 포함한 퀴어문화축제 전반엔 15만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퀴어축제 현장 인근에서 기독교단체가 스피커로 찬송가를 틀며 동성애 반대 집회에 나섰으나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 전문을 읽으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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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지난 5월 초, 퀴어축제 대신 기독교단체 집회에 서울광장을 내주기로 결정했어요. 서울시 고위 공무원과 법조인, 시의원 등이 참여하는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가 '퀴어축제를 보지 않을 권리'를 운운하며 불허를 의결했거든요. 요즘 서울시의 슬로건 중 하나가 '동행·매력 특별시'인데, 그 동행할 대상에 아마 성소수자는 포함되지 않나 봅니다. 이후 홍준표 대구시장은 서울시와 경쟁이라도 하듯 역시 "성다수자의 권익"을 언급하며 대구퀴어축제를 막으려고 했어요. 결국 퀴어축제가 열린 6월17일, 축제 현장을 관리하는 경찰과 홍 시장이 동원한 대구시 공무원이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우리의 지방정부는 보수 기독교계의 집회 방해 조짐으로부터 동료 시민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되레 혐오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서울퀴어축제에서 만난 미국인 대학원생 엘리씨(29)는 영국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경험을 들어 "영국의 경우 도시 전체가 이들을 축하하는 느낌이라면 서울은 정해진 장소에서만 축하하는 느낌"이라고 지적했어요. 정작 한국에서는 장소도 마음껏 쓸 수 없는 축제에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 국가의 대사관은 직접 참석해 부스를 열었습니다. 우리 국가기관에서는 유일하게 국가인권위원회의 염형국 차별시정국장이 참석했을 뿐입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는 퀴어축제에 영상메시지로 축하 인사를 건네며 "나라 안팎에서 인권과 기본 자유를 존중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 미국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음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지난달 미국에서는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등 주요 대도시에서 수만명이 참여하는 '성소수자 인권의 달' 기념 행사가 열렸어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같은 유력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축제는 이렇게 누구나 와서 즐기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 정부, 지방자치단체를 대표해 퀴어축제에 참석하는 인사를 만날 수 있을까요? 장소마저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되레 후퇴한 모습을 보니 내년, 내후년에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정혜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는 "왜 축제조차 투쟁의 현장이 되어야 하느냐"라고 말했어요. | |
그래도 이번 서울퀴어축제에서 참가한 이 커플의 '위풍당당'한 모습(김송이 기자 촬영)을 보니, 아주 더디긴 해도 꾸준히 전진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동성 커플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해 승리한 소성욱·김용민씨입니다. 아직 대법원 판단이 남았습니다. 이들의 법적 투쟁을 계속 지켜봐 주세요. |
일본 지방자치단체 255곳은 성소수자 파트너십 제도를 시행 중입니다. 파트너십을 등록한 일본인 세 커플을 인터뷰했습니다. 법적 혼인까지는 아니어서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변화가 파생될 수 있습니다. 지난 2월21일자 점선면Lite <🌈 우리 이제 파트너예요>편을 통해서도 같은 기사를 보실 수 있어요. 미국의 대학교가 문학 등 한국 근현대 문화에서 '퀴어성'을 읽는 기획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예일대 명예교수는 "모든 '이상들'을 '퀴어'로 옮기겠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날개'의 작가 이상(1910~1937)입니다. 1960년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도 퀴어를 모티브 삼은 코미디 영화가 나왔고, 주간지는 동성 결혼을 꾸준히 보도했습니다.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면 질문과 의견을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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