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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이 증거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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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9.21. 목요일

독자님 안녕하세요, 날이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건강히 지내고 계신가요?

전 지난 월요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다녀왔어요. 유혜민 감독의 <내 몸이 증거다>를 봤습니다. 201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을 다룬 다큐멘터리예요.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한 여성들의 부작용 사례가 속속 공유되던 때, 여성환경연대가 앞장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 유통되는 모든 생리대에 대해 “하루에 7.5개씩 한 달에 7일간 평생 사용하더라도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과를 발표했어요.

식약처 실험으로는 생리대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반박이 이어졌습니다. 실험에 잘라 쓴 생리대 양도 너무 적고, 경구나 일반 피부가 아닌 외음부나 질으로 흡수되는 특성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에서요. 결국 여성들은 ‘내 몸이 증거’라며 거리에 드러누웠습니다.

국내에서 일회용 생리대가 판매된 지 50여 년이 됐지만 여성환경연대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위험 평가, 전수조사가 없었다는 점을 유 감독은 지적했습니다. 월경이 터부시되는 사회에서 누구도 생리대가 안전한지 질문하지 않은 거죠. 대다수 여성이 수십 년에 걸쳐 사용하는 물품인데도요. 영화는 ‘과학이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한가’ 질문합니다.

안전하다고 설정된 ‘기준치’가 과연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묻습니다. 유 감독은 생리대, 가습기 살균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모두 같은 맥락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얼마 전 서울고등법원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고용노동부가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와 관련해 고시한 노출기준이 있는데요, 법원은 노동자가 화학물질 노출이 기준 이하로 측정된 작업환경에서 일하더라도 직업병에 걸릴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유해인자를 받아들이는 감수성(susceptibility)*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도 이유였습니다.

*의학용어에서 감수성은 어떤 요인에 반응하는 정도를 말합니다. 면역상태, 성별, 연령, 영양상태 등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판결을 다룬 김지환 기자의 기사를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눠보아요. 약 2분 분량입니다.

☑️ 공장에서 용접·도장 업무를 하며 유기용제를 사용한 노동자 오모씨는 전신경화증에 걸렸다.

☑️ 근로복지공단과 1심은 오씨가 일하던 곳의 유기용제 노출 수준이 낮다는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를 근거로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 2심은 보고서만으로 오씨가 일하던 작업환경을 알 수 없으며, 노출기준 이하 작업환경에서도 직업병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준치 이하' 유기용제 노출에도 산재 인정

2023.09.19. 김지환 기자

도장작업을 하는 노동자. 김상민 기자.

굴착기 하부 프레임을 만드는 공장에서 용접·도장공정 관리 업무를 하면서 유기용제에 노출된 노동자가 ‘전신경화증’으로 업무상 질병 판결을 받았다. 해당 공장의 화학물질은 고용노동부 고시가 정하는 화학물질 노출기준에 미달했지만 재판부는 산재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를 ‘사업장이 유해요인에 노출됐는지, 그 노출 유해요인에 대한 관리가 되는지를 살펴보는 기준’으로만 봤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대웅)는 지난 14일 오모씨(발병 당시 38세)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전신경화증은 원고가 다수의 유기용제 등에 노출된 것이 원인이 돼 발생했거나 적어도 다른 불상의 발병 원인과 겹쳐서 유발 또는 촉진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오씨는 2009년 7월 동일고무벨트의 의뢰를 받아 굴착기 하부 프레임을 만드는 기평하이텍에 생산관리자로 입사했다. 도장작업 현장을 관리하며 하루 2~3회 현장 근무를 했다. 2015년 8월부터는 현장에서 상주했다. 도장 설비를 분해하고 세척하는 일, 도장이 잘 안 된 부분을 붓으로 수정하는 일은 아예 전담했다.

오씨는 2017년 6월 전신경화증 판정을 받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승인을 신청했다. 전신경화증은 피부가 두꺼워지고 내부 장기의 이상을 동반하는 희소 질환으로, 유기용제 노출 시 발병 소지가 있다. 근로복지공단과 1심 법원은 오씨가 유기용제에 노출된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전신경화증과 업무 간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 법원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는 생산관리직으로 채용됐지만 사실상 사업장에서 작업자 업무를 하면서 1주 평균 69시간을 일하기도 했던 사실, 사업장에는 유기용제 등 유해요인이 발생했지만 원고에겐 생산관리자라는 이유로 보호장구가 지급되지 않은 사실 등을 보면 전신경화증과 원고 업무와의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유기용제 등 유해인자가 노동부 고시가 정하는 화학물질 노출기준 이하라는 회사의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에 얽매이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는 측정된 구체적 수치의 크기와 그로 일한 질병의 이환(병에 걸림) 여부보다는 사업장이 유해요인에 노출돼 있는지와 그 노출 유해요인은 무엇이고, 이에 대한 관리는 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기준의 역할을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고가 사용한 시너에 벤젠과 함께 다이클로로 메탄 또한 함유돼 있어 2개 이상의 화학물질에 혼합적으로 노출돼 그 유해성이 더 증가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노출기준 이하의 예시 자료들은 측정이 이뤄진 당시의 작업환경을 나타낼 뿐이고, 원고가 일할 당시의 작업환경을 나타낼 순 없다”고 했다.

오씨를 대리한 법률사무소 지담 임자운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작업환경 측정 결과’를 앞세워 산재 불승인을 남발하는 근로복지공단 태도에 변화가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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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몸은 다릅니다.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쓴 책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 따르면 사무실 적정 온도는 21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수치는 1960년대, 몸무게 70kg인 40살 백인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15년 보리스 킹마 박사가 사무직 여성의 대사율을 고려한 최적 온도를 계산했더니 23.2도~26.1도가 나왔습니다.

몸은 기관부터 세포 단위까지 광범위한 차이를 가지고 있고, '기울어진' 의학 연구가 지금까지 반영하지 못한 차이들이 있다고 책은 지적합니다.

오씨의 경우를 볼까요. 오씨는 여러 달에 걸쳐 주 평균 69시간 이상 일했습니다. 관리직으로 파견된 것이라 현장작업자들에게 주는 방진마스크나 방독마스크 등 보호장구를 받지도 못했어요.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전신경화증은 이 공장에서 사용하는 ‘유기용제’와의 관련성이 많이 연구됐습니다. 산재법도 전신경화증을 업무상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작업환경측정결과, 오씨의 일터에서는 유해인자인 혼합유기화합물, 메틸이소부틸 케톤, 톨루엔, 에틸벤제 등이 검출됐습니다. 다만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노출기준 이하의 농도였지요. 근로복지공단과 1심 법원은 이를 근거로 오씨의 병이 업무상 질병이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이를 뒤집고 2심 법원이 오씨 손을 들어준 이유는 이렇습니다. "작업환경측정결과로는 측정을 할 때 당시 환경을 알 수 있을 뿐, 오씨가 근무할 때의 작업환경을 알 수는 없다." 일 년에 두 번 작성되는 결과로는 수년간 오씨가 일하며 노출됐을 여러 상황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용노동부의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의 노출기준'과 관련해서도 엄격하게 해석했습니다.

노동부는 이 기준 제2조 제1항에서 "‘노출기준’이란 근로자가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경우 노출기준 이하 수준에서는 거의 모든 근로자에게 건강상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는 기준”이라고 설명합니다. ‘거의 모든 근로자’에게는 괜찮지만, 어떤 노동자에게는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거죠.

“유해인자에 대한 감수성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고 노출기준 이하의 작업환경에서도 직업성 질병에 이환되는(걸리는) 경우가 있다”고 제3조3항에서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이 두 조항을 인용했습니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노출기준을 넘었는지 안 넘었는지 그 수치를 고려하기 위함이 아니라 유해요인이 있는지 없는지, 어떤 유해요인이 있는지, 작업장에서 이 요인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등을 보는 기준으로서만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취재한 김지환 기자는 “작업환경측정보고서나 의학적 감정에 의존하지 않고 규범적 판단을 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맥락이 있다”며 다른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맥도날드에서 주5일 하루 7.5시간씩 햄버거 조리를 하다 쓰러진 노동자도 지난달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습니다.

이 노동자는 ‘과로 기준시간’인 주 60시간은 물론, 보통 ‘풀타임’이라고 하는 주5일 8시간보다 적게 일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업무상 과로로 판단하는 기준인 ‘12주간 주당 평균 60시간’이 하나의 고려요소일 뿐 절대적인 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고 봤어요. 원고는 56세 여성이었으며 매일 밤 11시까지 일해 잘 시간이 부족했던 것 등 개별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일해서 아픈 것 같은데, 똑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아프지 않을 때 본인마저 의구심이 들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일해서 아픈 걸까?’ 하고요. 하지만 많은 측정치가 자본 혹은 다수가 원하는 대로 주물러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 기준치라고 제시된 것들이 ‘건강한 몸’이라는 얄팍한 표준의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픈 내 몸’이 실재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산 넘어 산, 산재 승인 과정

경향신문 사건팀은 산재로 노동자가 사망한 뒤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취재했습니다. 사진은 한 산재 유가족이 산재 승인을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한 서류입니다. 가족들은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뒤, 애도할 시간도 없이 산재 증거를 모으려 뛰어다녀야 했다고 말합니다.

사랑스럽지만 불평등한 물리학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는 최초의 흑인 여성 교수 찬다 프레스코드와인스타인이 쓴 <나의 사랑스럽고 불평등한 코스모스>의 서평입니다. 저자는 입자물리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천재들의 고상한 영역"이 아닌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사회구조와 연관된" 영역임을 폭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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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의 이야기

📬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불편이란 단어에 불편함이 있었는데 그걸 해소했습니다." (하늘공항님)

📬 "자신의 감정적 불편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태도가 만연해 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됐습니다. 공감과 배려가 없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타인과 ‘불편한’ 마찰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심 없이 겉으로만 ‘불편을 끼쳐 죄송’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는 현상이 나타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공동체 구성원들과 진심 어린 관계를 맺는 과정은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레드벨님)

📬 "남들이 불편한 행동은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정론이 되면서 성희롱 등 사회적 문제들이 그제야 문제로 받아들여졌다는 생각은 있어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옳고 그름을 불편과 기분으로 ‘퉁쳐도’ 되는 걸까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그 부분을 잘 짚은 글이라 좋았습니다. ‘불편했다면 죄송합니다’라는 말은 누군가가 불편을 주장한다면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것 같아요. 때로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는 관계없이 본인 주관을 지켜야 할 때도 있는 건데 말이죠." (익명의 독자님)

📬 "내가 불편해지는 일 중에서도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일이 분명한데 그걸 손해 보는 것으로 느끼고 억울해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데 그 방법도 많이 치우쳐져서 결론은 ‘내가 불편하니 옳지 않다’는 쪽으로 나곤 하죠. 내 감정이 어디서 오는 것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많이 생각해봐야 할 듯합니다." (익명의 독자님)

📬 "대부분의 문명은 ‘수도권’을 위주로,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어른’을 기준으로, ‘남성’을 기준으로 발달해왔죠. 그래서 헌법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장애인과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 미성년의 권리를 보장하는 선언을 포함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나 더 ‘문명화’된 지금은 그마저도 ‘불편’이라고 비난하네요." (익명의 독자님)

📝 "지난 9월19일자 점선면Lite <나는 당신의 불편이다>에 보내주신 이야기입니다.

소개해 드린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저도 독자님들처럼 여러 일들을 마주하며 불편했던 이유를 알게 돼 후련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막상 아는 대로 살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불편’으로 뭉개버리던 일들은 아직 이름이 없었습니다. 대체할 언어를 찾아 또다시 이름표를 붙이려면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 같아요. 독자님 말씀처럼 ‘내 감정이 어디서 오는 것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저도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좋은 경험을 하신다면 또 공유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