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노동이란 월요일 아침엔 유난히 몸이 무겁습니다. 입에선 말이 절로 쏟아져요. "아, 일하기 싫다." 누가 들을세라 뱉은 말을 얼른 주머니에 구겨 넣고 집을 나섭니다. 한때는 간절히 바랐던 '출근길'입니다. 취업준비생 시절 "노는 네가 부럽다" 말하던 직장인 친구가 떠오릅니다. 되게 얄미웠는데, 딴엔 진심이었겠죠. "일하고 싶다"는 외침들은 늘 간절합니다. 서울시가 올해부터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중증장애인 노동자 400여명이 일자리를 잃고 복직투쟁에 나섰습니다. 이들에게 일은 ‘돈벌이’ 이상의 무엇이었습니다. 2분 분량의 칼럼을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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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는 2024년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을 폐지했다.
-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노래하고, 피켓 들고, 대화하며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활동을 '노동'이라 인정하는 제도였다.
- 권리중심 노동자들은 노동을 하지만 상품이 되지 않겠다는, 어쩌면 불가능한 요구에 도전하며 복직투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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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노동이란 2024.02.12.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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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해 악기를 두드리고 있다. 전권협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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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노래를 했고 누구는 악기를 연주했다. 피켓을 들고 캠페인을 하는 사람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생 그래프를 그리느라 진지한 사람, 혓바닥을 이용해 컴퓨터에 스토리를 입력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진집 제목은 <이것도 노동이다>. 말하고 싶은 바가 선명하다. 그것도 노동이라고 맞장구치기는 어렵지 않다. 무언가 해내는 인간의 보편적 활동을 우리는 노동이라 불러왔다. 가수, 연주자, 감독, 작가와 같은 직업의 이름으로 그런 활동을 분류하듯 우리가 누군가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에 노동은 꽤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도 사진 속 인물들에서 자꾸 '장애인'이 보이는 것은, '장애'와 '노동'을 이질적으로 느끼게 하는 오랜 습속 탓이다. 일-'할 수 없는(dis-abled)' 몸으로 간주되어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되어 온 역사.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는 '그것이 노동'이라고 인정하는 제도였다. 2020년 서울시에서 시작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2023년 10개 지자체에서 1300여명이 일하며 확대되는 추세였다.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채용하는 목표 아래 노동과 가장 멀리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노동자로 불러냈고 이들은 출근과 퇴근이라는 시간표로 기꺼이 자신을 밀어넣었다. 그런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4년 사업을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서울시는 일자리를 그냥 없애지 않았다. '장애 유형 맞춤형 특화일자리' 사업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예를 들어 지체장애인은 택시 승객을 응대하고, 발달장애인은 세탁물을 정리하고, 뇌병변장애인은 저작권 침해 콘텐츠를 검색하고, 청각장애인은 네일 아티스트를 하는 식이다.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듯하지만 상품설명서를 달아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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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권리중심공공일자리) 사업이 시작된 이후 지난 3년여간 초·중·고등학교와 기업에서 장애인식 개선 강사로 일한 장애경씨. 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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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많은 여성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질 때 정부는 '여성직종'을 제안했다. 1981년 근로복지공사는 '여성직업훈련 실시에 관한 연구'를 했다. '촉각적 지각, 연속적 주의 작업, 주관적 작업' 같은 것을 '여성에게 유리한 점'으로 꼽고, '여성에게 불리한 점'으로 '운동속도, 단시일 내의 일시적 주의 집중, 이론적 사고' 등을 꼽으며 여성직업훈련 직종을 선정했다. '여성직업능력개발'은 여전히 '여성'에게 더 적합하다고 여기는 직종에 집중되어 있고, '노인' 일자리 사업도 다르지 않다. 다른 모든 자리에 부적합하다는 인식을 강화하며 존엄을 깎아내린다. 동시에 어떤 노동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지 질문할 기회는 봉쇄되었다. 여성은 언제나 일-하고 있었지만 '경제활동 참여'가 '노동'의 의미가 될 때 수많은 노동은 비가시화되었다. 주어진 시간에 돈으로 환산되는 상품을 얼마나 만들어내는지가 유일한 질문이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국제노동기구의 지향과 목적을 밝힌 '필라델피아 선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한 것도 상품인 사회에서 노동이 상품이 아니기란 쉽지 않다. 농사를 짓건, 자동차를 만들건, 청소를 하건, '노동-하다'와 '상품-되다' 사이를 자의로 벗어나기 어렵다. 권리중심 노동자들은 노동을 하지만 상품이 되지는 않겠다는, 어쩌면 불가능한 요구에 도전하며 복직투쟁 중이다. 권리중심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을 '권리 생산 노동'이라고 말한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담긴 권리가 실현되도록 다양한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장애인의 권리 이상을 창출하고 있다. "나에게 노동이란?" 권리중심 노동자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진심, 새로운 도전, 꿈, 살아낼 힘, 자유, 만남, 이야기, 책임감, 배움, 희망, 사회에 한 발짝 나가는 것….' 이런 단어들을 상품의 포장지로 남겨둘지, 상품이 아닌 권리로 바꾸어낼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노동의 권리를 다시 쓰는 거대한 여정이 시작되고 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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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장애인들은 춤추고 노래합니다. 노래를 직접 만들기도 합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소리칩니다. 학교나 회사를 방문해 강의하기도 하죠. 모두 장애인의 권리가 무엇이고,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 시민사회에 알리기 위해 하는 노동입니다. 원래는 국가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한국 정부는 외면했던 일이고요. 정부는 2008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DP)을 국회에서 비준하고도, 그 내용과 목적을 알리고 교육하지 않아 2014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로부터 '인식 제고 캠페인'을 벌일 것을 권고받은 적 있죠. 2020년 서울시가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시행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국가 몫이었던 '인식 제고 캠페인'을 장애인에게 맡기는 사업이었습니다. 이 사업으로 중증장애인들은 '장애인 권익옹호',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문화예술' 등의 분야에서 CRDP의 내용과 목적을 시민사회에 알리는 일을 하게 되었어요. 이것도 노동일까,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악의와 뒤섞여 오해를 낳기도 하죠. 지난해 6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단체가 불법 시위를 일자리로 포장해 실적 보고서를 제출했다"면서 "전장연이 보조금으로 진행한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 건수' 중 50%가 집회 및 캠페인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대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곧 '인식 제고 캠페인'이기 때문에 집회와 시위가 포함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 의원은 시위가 노동이라는 '거짓 포장'을 둘렀다고 말합니다. 시위도 노동일 수 있다는 생각,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란 상품·서비스처럼 시장에서 팔리는 재화를 생산하거나 이윤을 창출하는 일로 오랫동안 여겨져 왔으니까요. 여성들이 가정에서 도맡아 온 집안일을 '노동'이라 부르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입니다. 사회가 유지되고 나아가려면 '돈 버는 일' 말고도 필요한 노동이 많습니다. 집안일부터 그렇고요, 정치활동·사회운동·지식생산 역시 사회 전체의 가치를 증진하는 노동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각이 통용되는 사회에서는 중증 장애인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몸들이 수행할 수 있는 일자리도 더 많아지겠지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장애인 노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임금 노동 전반에 대한 반란일 수 있다"(정창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노동권위원회 간사)는 이야기는 이런 맥락에서 나옵니다. 노동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을 폐지하고 '장애 유형 맞춤형 특화일자리' 사업으로 바꾸겠다고 합니다. '돈 버는 일'로만 노동의 세계를 다시금 좁히고, 장애인 노동자들에게 기능과 실적을 요구하는 기존의 일자리 사업으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깁니다. 2019년 공공일자리에서 실적 압박을 받던 장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는데도요. 어떤 노동자들은 기능과 실적이 뛰어나 돈을 많이 법니다. 하지만 그의 노동이 꼭 사회에 크게 기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해악을 끼칠 수도 있죠. 돈 한 푼 못 버는 일이 도리어 세상을 더 살만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하철역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는 장애인들의 시위가 결국 모든 시민들의 지하철 이용을 편하게 만든 것처럼요. 지금껏 후자의 활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습관처럼 뱉던 "일하기 싫다" 혼잣말에는 내 노동을 그저 '돈벌이'로만 여기는 오래된 생각이 묻어 있었던 건 아닌지 되짚어 봤습니다. 오직 '먹고 살기 위해' '돈 벌려고' 하는 활동으로만 내 노동의 가치를 한정해 온 것은 아닌가 해서요. '나와 사회를 위한 일'로서의 노동을 더 자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싶은 월요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요. 권리중심 노동자들의 복직투쟁에 응원을 보냅니다. 김지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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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전국 최초로 시작하고 폐지하기까지 일련의 과정과, 그 속에서 장애인 노동자들이 보냈던 시간들을 꼼꼼하게 정리한 기사입니다. 지난 3년간 학교와 회사에서 장애인식 개선 강사로 일했던 장애경씨가 돌연 해고 통보를 받기까지, 서울시 '약자와의 동행'이 걸어온 퇴행의 경로를 따라가봅니다. |
디지털성범죄에 대해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 고민하시는 독자님께 추천드려요. 경향신문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과 함께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성범죄 예방 콘텐츠 3건을 제작했어요. 링크로 연결되는 게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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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스레터팀 광고, 기타 문의: letter@khan.kr 서울시 중구 정동길3 경향신문사 l 02-3701-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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