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가정이지만,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만약 지니를 램프에 계속 가둘지 말지 정하는 요정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면, 알라딘은 그의 자유를 선뜻 약속할 수 있었을까요? 상상 속의 알라딘은 특유의 서글서글한 미소를 잠시 거두고, 지니에게 곤란하다는 듯 말합니다. "미안한데,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
삼권분립 체계에서 범죄의 유·무죄와 형벌을 결정하는 것은 사법부의 일입니다. 원칙적으론 대통령이 결정할 일이 아니죠. 그런데도 헌법은 대통령에게 형벌을 면제할 수 있는 '사면권'을 부여하고 있어요.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요. "법 이념과 다른 이념과의 갈등을 조정하고, 법의 이념인 정의와 합목적성을 조화시키기 위한 제도로 파악되고 있다."
국가를 위해 중요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거나 불합리한 재판의 피해자를 구제해야 할 때, 대통령 사면권을 예외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오·남용이죠. 누가 정권을 잡든 특별사면이 단행될 때마다 대통령의 사적·정치적 이익을 위해 제도가 잘못 이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 나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설 특별사면에서 특히 문제시되는 것은 '약속 사면' 의혹입니다. 특별사면은 '형이 확정된 사람의 형 집행을 면제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한데요. 김대열·김관진·김기춘 세 사람 모두 사면 심사위원회가 열리기 직전 갑자기 '형이 확정된 사람'들입니다. 마치 사면을 미리 약속받기라도 한 듯 급하게 대법원 상고·재상고를 포기했어요.
어차피 사면받을 거라면, 사법 시스템 내부에서 굳이 애를 쓰며 최종 판단을 받을 이유가 없어집니다. 앞선 1·2심 판결 내용도 아무 상관 없어지죠. "약속 사면이 실제라면 사법권을 농락하는 행태에 가깝다" "진행 중인 사법 절차에 정부가 개입하는 격"(한상희 교수)는 말에 동의가 됩니다.
대통령 사면권이 삼권분립의 '예외적' 창구로 역할 하려면, 사법부의 독립적 권한·절차에 대한 대통령의 존중이 선행돼야겠죠.
거듭되는 '약속 사면' 의혹은 사법권, 나아가 분권 제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이 뻗쳐가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보게 합니다.
대통령 경호를 이유로
국회의원과
카이스트 졸업생이 입이 틀어막힌 채 사지가 들려 연행됩니다. 대통령 발언을 방송한 언론사는 "'확인되지 않은' 발언 내용을 보도했고 사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습니다. 지난해 여름, 광복절 특별사면 이후 '
대통령이 왕일까?'라는 제목의 점선면을 보내드렸는데요. 같은 질문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