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6일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2025학년도부터 5년간 1만명을 증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19년 만에 의대 정원 규모가 바뀌게 됩니다.
현재 전국 40개 의과대학의 정원은 3058명입니다. 2006년 이후 18년째 동결돼 있습니다. 2000년 의약 분업 때 의사단체의 반발이 거세자 의대 정원을 351명 줄여 3058명으로 고정됐습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은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2029학년도까지 5년간 5058명 정원을 유지함.
-2031년부터 2035년까지 최대 1만명의 추가 의사 인력이 배출됨.
이러한 증원 계획안이 나오기까지, 의대 정원 규모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는 1년 넘게 말 그대로 ‘핫이슈’였습니다.
‘응급실 뺑뺑이’‘소아과 오픈런’‘의료난민’···.
지역·필수의료 공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죠.
보건복지부는 2023년 1월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의료계 현안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해소할 정책에 관한 의료계 의견을 모으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의사 구인난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왔습니다. 사건·사고도 잇달아 벌어졌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상반기 응급·중증진료체계, 소아진료체계 등에 관한 정책을 잇달아 발표했습니다. 급한 불을 꺼야 했습니다.
정부가 구체적인 의대 증원 계획을 시사한 건 지난해 6월이었습니다.
정부와 의협은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2025년 입시에서 의대 정원을 확대하는 방안에 합의”했습니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에는 반대 입장이지만 논의에는 참여한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지역·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합니다. 의사들이 인기 진료과목이나 수도권에 쏠리는 현상을, 또 환자들도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아야만 하는 현상을 완화하고자 여러 정책을 담았습니다.
주요 내용은 전국 17개 국립대병원(본원 10곳+분원 7곳)에 인력과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지역 내에서 의료 공급과 수요를 총괄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 인력 확충 측면에서 보면, 지역 거점 의료기관의 역량을 키우면 의사들도 이곳에서 일할 유인이 될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또 이들 의료기관은 전공의들의 수련기관이기도 하지요.
이때 모두의 관심을 끌어모은 것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증원 수요조사’였습니다. 정부가 지난해 10월27~11월10일까지 전국 의대 측에서 연도별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관한 서류를 제출받았습니다.
그리고 11월21일 복지부가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수요조사 결과 전체 의대에서 제시한 2025학년도 증원 수요는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민사회에서 ‘1000명 이상 증원’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2000명대 숫자가 나왔습니다.
의사단체는 수요조사 결과 발표에 반발했습니다. 정부가 “비과학적”인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해 여론전을 벌인다고 봤습니다.
의협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파업을 시사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의협은 회원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를 곧바로 발표하진 않았습니다. 투표가 끝난 12월17일 서울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의대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올 1월엔 의대 증원 계획을 밝히겠다고 했지만 점점 늦어졌습니다.
2월1일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토론회에서 ‘의료개혁’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의대 증원 계획도 담겼습니다. ‘숫자’는 빠져 있었지만 2035년 의사 수가 1만5000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수급 전망에 근거해 의대 증원을 추진하겠다고 했죠. 대규모 증원론(1500~2000명)이 나왔습니다.
2월6일 정부가 드디어 의대 증원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몇 가지 쟁점을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의사들의 파업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가 관건입니다.
우선 의료현안협의체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1년여간 총 28회 열렸습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의료계와 충분히 소통했다”고 강조합니다. 의협도 의대 증원에는 반대하지만 이 의료현안협의체에 꾸준히 참여해 소통해왔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의협은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의대 증원 계획안은 합의가 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잠깐, 3년 반 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2020년 7월 당시 문재인 정부는 공공의대 설치를 포함해 의대 정원을 매해 400명씩 10년간 4000명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코로나19 와중에 의사단체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이 계획 추진은 중단됐습니다. 그때는 4000명, 이번엔 1만명. 총 증원 규모에도 차이가 있지요.
당시 정부와 의협은 9월4일 의·정합의를 맺었습니다. 의사단체는 파업을 중단하고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계획 추진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코로나19 유행이 안정되면, 의대 증원 논의를 다시 시작한다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의협은 정부가 “9·4 의정합의를 파기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 합의에 따라 의대 증원안은 의협과 논의·합의해 한다고 주장합니다.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의협 협상단 대표)은 2월6일 정부가 의대 증원 계획을 발표하기 직전 개최한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아래와 같은 입장문을 발표하고 곧장 자리를 떴습니다.
의료계와의 소통 없이 독단적으로 추진되는 일방적인 의대 증원 정책으로 앞으로 발생하게 될 의학교육의 질 저하, 국민 의료비 부담 가중, 의대 쏠림 가속화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정부에 있습니다. ”
이에 대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정부는 공문으로 의협에 의대정원 적정 규모에 대한 의견을 지난달 15일에 요청한 바 있으나 외면을 하였고, 공식·비공식적으로 적정 규모를 재차 요구하였으나 의협은 끝까지 답변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의협과 논의해 온 이유는 의료계의 충분한 의견을 듣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달린 문제 그리고 국민들 80% 이상이 찬성하시는 의대정원 문제를 단순히 정부와 의사단체 간의 협상으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협상을 통해 의대정원을 결정하는 사례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래서 오늘 의료 공급자, 소비자, 전문가가 참여하는 법정기구인 보건의료정책심의회의 논의를 거쳐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방안을 확정하였습니다.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의사단체의 일방적인 주장이며 저희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의협은 정부가 증원안을 만들어놓은 채 의협과는 형식적 절차만 거칠 뿐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의료계가 파업을 준비하는 하나의 명분이기도 합니다.
의료계는 설 명절 직후 파업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상(1000명대)을 뛰어넘는 증원 규모에 반발 여론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지난 7일 의협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면서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습니다.
정부는 의사단체의 집단행동 시 엄정 대응하겠다고 했습니다. 업무복귀 명령을 내리고 불응 시엔 고발 조치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의료법이 개정돼 ‘불법 파업’으로 처벌 받으면 의사 면허가 취소될 가능성도 생겼습니다.
한번에 2000명 증원하기 때문에 의료교육의 질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데, 정부가 이를 어떻게 정책적으로 풀어나갈지도 주요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대학별 교육역량을 조사했고 예과 2년이라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의학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두 번째 쟁점은 의대 증원만으로 문제 해결 가능한가란 질문입니다.
의사단체는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으며 의사 구인난은 배치의 문제라고 봅니다. 필수의료에 대한 지원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마련했습니다. 5년간 10조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 필수의료, 지역의료에 대한 보상을 강화(수가 인상)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의료인 공제·보험 가입을 전제로 필수의료 의료사고에 관해 공소 제기를 제한하는 내용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도 추진합니다.
전공의 연속 근무시간 단축, 수련비용 지원 등의 내용도 추진합니다. 다만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은 환자의 피해 구제를 어렵게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요, 건강보험 수가 인상은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고령화로 의료이용이 늘면 재정 지출이 늘어날 것인데요. 정부가 건강보험에 국고 지원을 늘리겠다는 방침은 밝히지 않았고 지출 효휼화로 재정 균형을 맞추겠다고 했는데 보장성(급여 적용 범위)이 줄어든다는 비판도 거셉니다.
정부는 보상을 통해 유인하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지역·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할 것이라고 장담하긴 어습니다. 의사들이 새로 배출된다고 해도 인기과목, 수도권 쏠림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강제성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사회는 지역의사제 도입과 공공의대 신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관련 법률이 국회에 계류 중에 있습니다.
정부는 공공의대 신설은 이번 의대 증원 계획안에 담지 않았습니다. 지역의사제 대신 지역필수의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의무’와 ‘계약’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정부는 또 비수도권 의대 지역인재선별 전형을 40%에서 60% 수준으로 높이도록 지 정책 지원에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정부는 의사들의 일터를 강제할 순 없지만, 이런 정책을 추진하면 의사들이 출신지, 교육·수련받은 지역에서 일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 밖에도 이공계 인재 이탈 문제도 거론되고 입시 사교육계가 들썩인다고 하니, 의대 증원 계획 발표 이후에도 정부가 풀어할 정책 과제가 많습니다. 대학별 증원된 정원 배치는 4월 교육부가 발표할 것으로 보입니다. 의료계에 있거나 교육계에 있거나 대학 입시를 준비하거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들을 포함해 건강보험 가입자이면서 의료서비스 수요자인 시민들의 관심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로서는 큰 산을 막 오르기 시작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