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중학교에 막 입학할 무렵 동네에 이런 이야기가 괴담처럼 돌았습니다. 보호자 없이 친구들끼리 보내는 수학여행 첫날 밤, 학생들이 모여 교사 몰래 영화 채널을 틀었다. 소위 '19금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성관계 장면이 시작하고 얼마 후, 신난 친구들 가운데서 성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던 한 학생이 너무 놀라 그만 기절했다…….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황급히 동생에게 당시 유행한 성교육 만화책을 선물했습니다. 수학여행에 가기 전 꼭 읽으라고 당부했고요. 성교육은 보호자에게 참 곤혹스러운 영역입니다. 언제, 어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해야 할지 난감하게 느껴집니다. 보호자부터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도 많을 거예요. 그래서 더 공교육과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공적 영역에서 성교육은 위기를 겪고 있어요. 전국의 공공도서관은 보수 학부모 단체로부터 성교육·성평등을 주제로 한 어린이책을 폐기하라는 민원을 받고 있습니다. 성평등 관련 어린이·청소년 책을 추천하는 ' 나다움 어린이책' 목록도 선정을 중단하는 일을 겪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 정책도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과정 심의안을 개정하면서 '차별, 강압,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임신·출산을 결정하고 존중받을 권리' '평등하고 안전한 관계를 맺을 권리'를 포괄하는 개념을 삭제했습니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는 조례안에 "학교 성교육의 목적은 절제"라고 명시했다가 비판받았고요. 인터뷰 속 이지현 PD도 이런 분위기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민원이 제기될 게 뻔했고, 주변에서도 '문제 되면 어떡하냐'고 우려했습니다. "성교육은 정치 교육"이라는 말에서, 그가 그럼에도 이 방송을 만든 이유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파트너를 존중할 것인가, 어떻게 내 의사를 주체적으로 표현할 것인가를 배우는 민주시민 교육"이 아이들에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초등학교도 안 간 아이들에게 '남자친구/여자친구 있어?'라고 묻는 것은 '귀여운 질문'이 되고, 몸의 일부나 아이가 태어난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금기처럼 대하는 풍경은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에게 스스로를, 서로를 대하는 법을 더 잘 배울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딩유> ' 내 몸은 내 거야' 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혹시 누가 원치 않게 내 몸을 만져서 기분이 나쁠 때, 그것을 비밀로 간직하지 말고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꼭 말하라고요. 누가 믿을 수 있는 어른인가 돌이켜 보게 돼요. 평소 성이나 몸에 대해 쉬쉬하며 '부끄럽거나 더러운 것' '말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가르치는 어른일지, '자연스러운 것' '스스로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다뤄야 할 소중한 것'이라 가르치는 어른일지요. 오경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