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가 멸종된 시대 독자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3분 분량의 칼럼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가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를 통해 용서와 회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기사를 함께 읽기 전, 점선면팀에 새 소식이 있어 전해드려요. 김지혜 기자가 떠나고 유경선 기자가 새롭게 팀에 합류했습니다. 당분간 허남설, 유경선, 오경민 기자 셋이 독자님께 뉴스레터를 전하게 됐어요. 김지혜 기자의 작별 인사와 함께 오늘 레터를 시작하겠습니다! " 독자님, 김지혜 기자입니다. 아쉬운 작별인사예요. 정든 점선면팀을 떠나 경제부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독자님께 다가가 말을 걸고, 마음을 받고, 직접 눈을 맞췄던 소중한 경험들 점선면에서 잔뜩 챙겨갑니다. 오래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좋은 기사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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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의 한 장면. 슈아픽처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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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주인공인 볼코노고프는 스탈린 정권 비밀경찰로서 무고한 이들을 강제로 자백시키거나 숙청하는 일에 가담한다.
- 조직에서 탈출한 볼코노고프는 유족에게 용서를 구하러 다닌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
- "내가 갈 곳은 천국이 아니"라며 끝까지 용서를 청하는 볼코노고프를 통해 이소영 교수는 충분한 고통을 수반하는 속죄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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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자의 속죄 2024.2.20.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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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경찰 조직 엔카베데(NKVD) 소속 대위 볼코노고프는 어느 아침 출근길에 직속상관의 투신을 목격한다. 참모 회의가 취소되고 부서 동료가 하나둘씩 재심사로 불려들어가자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피의 대숙청'이 한창이던 1938년의 스탈린 정권하에서 이는 내부숙청 대상에 포함되었음을 의미했다. 자기 차례가 오기 직전 볼코노고프는 탈출을 감행한다. 그날 밤 노숙인 무리에 섞여 있던 그는 처형당한 이들을 파묻는 노역에 동원되고, 불과 아침까지도 함께 농담을 주고받던 가까운 동료의 시신을 거기서 본다. 동료의 유령은 흙더미를 헤치고 나와 말을 건넨다. 내용인즉슨 자기처럼 지옥에서 창자가 끊기는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죽기 전 한 명에게라도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거다. 날이 밝자 볼코노고프는 직장에 잠입하여 무고하게 숙청된 이들의 명단을 빼내 온다. 기밀을 쥐고 당국과 협상하거나 망명을 시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 적힌 주소로 찾아가 유족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나타샤 메르쿨로바, 2023)는 이렇듯 가해에 가담해 손에 피 묻혀온 이의 속죄 행적을 좇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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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의 한 장면. 슈아픽처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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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구하기 위한 대탈출"이란 홍보문구와 달리 회개의 장면은 쉽사리 펼쳐지지 않는다. 일터 잃고 재산 몰수당한 채 사회적 죽음을 살아내는 이에게 가해집단 내부자가 찾아와 '당신 가족이 고문당하다 죽었는데 용서해달라'고 청함엔 일말의 감동도 없다. 저러면 안 되지 않나. 꿰찔린 상처에 더러운 손 갖다 대는 것 아닌가. 중상 입은 나치 친위대원이 유대인인 자신을 병상에 호출해 '편히 눈감을 수 있게 참회를 대신 받아달라'고 간청했다던, 홀로코스트 생존자 비젠탈의 경험도 떠오른다. 피해자에겐 용서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산 자가 죽은 자를 대신해 용서를 베풀 권한은 성립하기 어렵다. 아버지가 쓴 누명 때문에 시체보관소 관리직으로 쫓겨난 여의사는 가해자에게 "뒈져버려요"라고 일갈하고, 반체제적 농담을 했다는 죄목으로 아내가 잡혀간 후 술로 연명하던 전 동료는 "이건 또 다른 농담이네"라고 반응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들은 꼬마는 "당신들이 파시스트보다 고문을 더 잘했나봐요?"라고 되묻는다. 마땅히도 그는 그중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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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의 한 장면. 슈아픽처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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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자의 속죄는 그렇다면 무의미할까. 유족을 찾아간 가해자는 '내 탓이오'의 달콤한 감상 뒤에 숨어 흐느끼거나 '이 죄인이 구원받았습니다'라며 신의 이름을 빌리지 않는다. 본인이 체제의 희생자라 강변하지도 않는다. 저마다 다른 상흔의 '얼굴'을 마주하며, 그는 그간 가담해온 잔학행위를 차례로 복기한다. 관념 아닌 감각으로. 사후 겪을 거라던 창자가 끊기는 고통에 산 채로 빙의한다. 그리고 기억해낸다. 이른바 "잠재적 적에 대한 예방조치"의 본질이 계획하거나 행하지 않은 일을 강제로 자백시키는 것임을 듣고도 상관의 명을 거부하지 않았음을. 효율적 총살 연습에 동료보다 앞서 자원했음을. 참회는 사과의 언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소환해낸 부정하고픈 기억들로 인해 비로소 가능해진다. 마지막에 다시 등장한 유령은 회개를 치하하지만, 볼코노고프는 "내가 갈 곳은 천국이 아니"라며 교리에 따른 구원을 앞질러 봉쇄하고자 자살을 택한다. '용서하지 않을 권리'와 '용서를 청함의 윤리'는 화해 불가하면서도 분리 불가한 채 이렇듯 병존한다. 어떤 죄책감은 "네 탓 아냐"의 위무 대신 비열했던 과거의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요하며 속죄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해 충분한 고통을 일으킬 때만 가라앉는다고, 신뢰하는 정신의 선생님께 들었다. 사회적 상흔 역시 그럴 것이다. 가해자의 서사를 듣는 건 정치적·법적 책임을 제하거나 공동체적 화해를 함부로 논하기 위함이 아니다. 고통스럽게 기억하고 또 기억하기 위해서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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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언제까지 해야 할까요? 가해자 입장에서는 '용서 청함'의 과정이 생각보다 지난해지면 억울한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마음을 굳게 걸어 잠근 상대방에게 대체 원하는 게 뭐냐, 내가 언제까지 죄인이어야 하냐, 심지어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묻는 이들을 저는 봤습니다. 사실 그걸 피해자도 알고 싶을 겁니다. 고통이 언제 끝날지요. 훌훌 털어 버리거나 산뜻하게 잊고 싶은데, 잊히지 않고 계속 아프니 문제인 거죠. 가해자도 사과하기를 그만둘 수 있습니다. 다만 용서받기는 포기해야 해요. 그건 피해자의 몫이니까요. '할 만큼 했다' '이만하면 됐다'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할 말입니다. 그러나 종종 상식에 반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가해자가 충분히 혹은 아예 사과하지 않고도, 피해자에게 '그만하라'고 침묵을 요구합니다. 얼마 전 신임 KBS 제작본부장은 <다큐인사이트> 제작진에게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방영할 예정이었던 '바람과 함께 살아낼게(가제)'를 6월 이후 방송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요. 더욱 문제인 건, 익숙함이 느껴질 정도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명백한 사과나 유가족 면담 없이 이태원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사과하면 지는 것'이라는 식의 태도도 이미 무책임한데, 그것을 넘어 '사건을 이야기하면/기억하면 지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납니다. 최근 여러모로, 잘못을 저지르냐 아니냐보다 잘못을 저지른 이후의 태도가 어떤지가 성숙함의 지표라는 걸 깨달았어요. "나는 인간과 사회의 '질'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음과 지성의 용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읽던 책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에서 이런 문장을 만나기도 했고요. 우리 사회의 질은 높아지고 있는 걸까요? 사과하기는커녕 고통을 말할 때부터 입을 틀어막는 사회에서 곧 용서가 멸종되는 것은 아닐까요. 오경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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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는 다큐멘터리 방영 무산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사측은 다큐 제작 실무진이 회의에 올린 안건명을 '세월호 10주기'에서 '다큐인사이트-바람이 되어 살아낼게'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박민 사장은 유가족과의 면담을 거부했습니다. |
정부가 정한 복귀 시한을 3일 넘기고도 전공의들이 현장에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제는 역대 최대 규모 집회가 있었고, 오늘부터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정부의 행정처분 및 사법절차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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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필요했던 아이들의 성교육이 이제야 수면으로 나오는구나 싶어요." (마꼬야나님) 📬 "주로 언급되는 콘텐츠 시청층이 1020 또는 3040이다보니 영유아나 청소년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별로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아서 신선했어요. 관심 끌기에만 급급한 미디어 시장에서 성교육, 아동청소년이란 주체를 상기하게 돼서 좋았습니다." (y21님) 📬 "단순히 성교육을 절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젠 속일 수도 가릴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요." (슬기로운 불꽃님) 📬 "오래된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성교육 내용을 처음으로 방영했다는 점이 놀라웠고 아직도 우리나라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어른이 된 건 적절한 교육, 필요한 학습을 하지 않아서 아닐까 싶었습니다. 지금의 어린이들, 아이들은 우리가 사는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에서 살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공교육 영역부터 성을 비롯한 다양한 내용들이 전달되고 공유되었으면 합니다." (아영잉님) 📬 "성이라는 주제는 신기한 것 같아요. 금기시되면서도 동시에 흔히 논의되는 주제니까요. 이런 주제는 현재의 사회에서는 감춘다고 가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충분한 사고력이 길러질 때까지 통제하고 기다리기보다 올바른 성적 지식을 2차 성징이 오기 전에 알려주는 게 좀 더 수월하게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길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익명의 독자님) 📝 "지난 점선면Lite < 💊 모르는 게 약일까?>를 읽고 많은 독자님들이 의견을 보내 주셨어요. 소개해 드린 기사에 달린 포털의 댓글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라 놀랐고 또 반가웠습니다😂 지난달 26일 보내드린 점선면Lite < 👆그리고 아무도 남지 않았다>를 읽고 보름 독자님이 은유 작가의 <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추천해 주셨어요. 어느 나라의 국적도 갖지 못한 채 한국에 머무르는 아이들의 현실을 알고 싶은 분들께 권합니다. 보름님처럼 레터를 읽고 다른 독자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책, 영화 등 콘텐츠가 있으시면 언제든 아래 버튼을 눌러 의견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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