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는 비단 총선에서만 없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관련 뉴스도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지난해 오염수를 방류하기 전과 비교하면 보도 열기는 확연히 식었죠. 어느새 일본은 4차 방류를 끝냈습니다.
정부는 188차 브리핑까지 수산물은 모두 먹기에 '적합'하며 해양 방사능은 기준치보다 '낮다'는 말을 반복했어요. 거의 매일 비슷한 이야기여서 전하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일본 언론을 거쳐 간혹 후쿠시마 원전의
특이점이나
지진 소식이 들려오지만, 예전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오염수에 무뎌졌기 때문에 관련 뉴스가 없는 걸까요, 뉴스가 없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는 걸까요? '닭이 먼저, 달걀이 먼저' 같은 의문을 곱씹어 봅니다. 익숙함이 참 무서워요.
For Third World, Water Is Still a Deadly Drink.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1997년 1월 9일자 신문에 기고한 칼럼 제목입니다. '제3세계에서 물은 여전히 치명적이다.' 인도 뭄바이와 가까운 어느 슬럼가에서 아이들이 더러운 물을 마시고 설사병을 앓다가 죽는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사실, 이 또한 '익숙한' 일이죠.
크리스토프는 개발도상국의 보건과 복지에 원래 관심이 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취재했는데, 내심 불만(?)도 품었던 모양입니다. 아이들의 목숨이 걸린 아주 중요한 문제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의 일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이런 아이러니를 보면서요.
"언론은 주로 당일에 벌어진 일을 다루려고 해요. 기자회견장에 진을 치고 특종을 좇죠. 일상적인 일을 다루지는 않아요. 매일 겪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를 놓치곤 하고, 일상에서 겪는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이야기도 지나쳐버리죠. 매일 벌어지는 일들은 결코 뉴스거리가 아니거든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인사이드 빌 게이츠> 중)
하지만 이 기사를 주목한 두 사람이 있었죠. 바로 빌 게이츠와 그의 부인 멀린다 게이츠(2021년 이혼)였습니다. 게이츠 부부는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해 배변에서 연료와 음용수를 추출하는 '옴니 프로세서'를 발명했습니다. 크리스토프는 이제 그날의 뉴욕타임스 칼럼을 가리켜 "이게 제가 쓴 가장 중요한 기사가 됐죠"라고 말합니다.
익숙해서 지나치는 건 뉴욕타임스 같은 권위 있는 신문 지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책방 에세이 판매대에서도, OTT 콘텐츠 섬네일에서도 어떤 이야기가 익숙하지 않은지, 즉 새로운 자극을 주는지는 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익숙한 문제는 어쩌면 익숙하다는 바로 그 점이 가장 큰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잊고 사는 사이 그 문제가 더 곪아버리고요. 누군가는 크리스토프처럼 익숙한 문제를 계속 전해주면 좋겠습니다. 그 글의 독자가 꼭 빌 게이츠 같은 명사가 아닐지라도 각성이 하나, 둘 모이다 보면 어떤 힘을 이루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점선면팀은 오늘처럼 익숙한 일을 다시 보게 하는 기사를 꾸준히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