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 인용하지 않은 보고서 내용 중 흥미로운 부분이 또 있습니다. 바로 9 to 6가 정착된 시기는 비교적 최근인 2004년쯤이라는 거예요. 1955~1960년엔 출퇴근 시간을 1시간 당기는 '썸머타임제'를 실시했고요, 조선 시대엔 계절에 따라 출근은 오전 5~9시, 퇴근은 오후 3~7시 사이에서 달라졌다고 합니다. 출퇴근 시간은 정하기 나름입니다.
고용노동부가 2022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 5곳 중 1곳(21.3%)은 이미 시차출퇴근제를 시행하고 있어요. 점선면 독자님 중에도 유연하게 출퇴근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적지 않은 직장인이 1년에 단 하루나마 시차출퇴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일! 그날 평소보다 느긋하게 버스, 지하철에 앉아 출근한 기억이 떠오르시나요?
오늘 소개한 기사에는 주로 비용과 교통 효과가 언급됐지만, 시차출퇴근은 이렇게 원(₩)과 분(minute)으로 환산할 수 없는 부분까지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 아주 큰 제도 같아요. 널리 퍼지기만 한다면요.
생각해 보면 요즘 뜨거운 의대 정원 이슈와도 관계가 있어 보여요. '소아과 오픈런(소아과가 문 열기 전에 미리 줄서서 진료를 기다리는 현상)'을 보면서 많은 분이 '의사 수가 부족한 거 아닐까?'란 의문을 품으셨을 텐데요. 소아과 의사 수가 충분한지도 쟁점이지만, 맞벌이 부부가 아픈 아이를 병원에 데려갈 수 있는 시간이 이른 아침뿐이란
지적도 많습니다. 회사 눈치를 보면서 양해를 구하거나 반차를 내서 오픈런을 한다는 거죠. 그래서 오후에는 한산한 소아과도 많다고 합니다.
출퇴근 시간이 유연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젊은 엄마들이 일찍 소아과 진료를 마치고 브런치를 즐기기 때문"이란 근거 없는 말이 나올 일도 없었을 거예요.
9 to 6 근무시간 중 어린이집·유치원이나 학원에 아이를 맡기는 분들의 고충도 덜지 않을까요? 요즘 자녀의 귀갓길을 돌보는 이른바 '등하원 도우미' 고용에만 100만~200만원을 쓰는 부모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런 비용을 아끼는 효과도 그렇지만, 부모가 유연하게 출퇴근하면서 직접 어린 자녀의 귀갓길을 챙길 수 있다면 그때 안정되는 마음의 비용은 얼마로 환산할 수 있을까요.
집값에 미치는 영향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상상도 해봅니다. 출퇴근길이 보다 여유로워지고 시간도 적게 든다면, 직장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 10분이라도 줄여보려고 애써 도심에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려는 수요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적어도 초만원 지하철에서 정신을 잃고 마는
일은 사라질 거고요.
하다못해 아침 식사를 든든히 챙기거나, '모닝커피'를 여유롭게 즐기거나, 알찬 운동으로 몸을 가볍게 풀고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욕구들을 어느 정도 실현할 수 있을 거예요. 지나치게 권위적이어서 비위 맞추길 강요하는 상사가 있다면, 그 얼굴을 하루 단 한 시간이라도 적게 보는 것도 제법 큰 복지가 아닐까요? 이런 소소한 행복도 모두 시차출퇴근제가 낳을 효과로 환산해 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