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돌봄'으로 본 '남성 해방의 길' 오늘 소개할 기사는 '아들 돌봄'이란 키워드가 눈에 띄어 골랐습니다. 이미 사회 곳곳에 그림자처럼 드리운 채 좀체 논의되지 않는 남성의 돌봄 문제를 생각하게 합니다. 돌봄 부담이 여성에게 쏠린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남성 돌봄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2분 동안 칼럼 읽고 대화 이어갈게요. 💌 봄기운이 완연한 4월, 뉴스레터 점선면이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 여러분을 만납니다. 점선면의 새 로고 어떤가요? '하나를 보더라도 입체적으로'란 점선면의 슬로건대로 독자님들과 함께 사유의 공간(space)을 드넓게 열어가자는 뜻을 우주(space)의 이미지로 표현했어요. 뉴스 큐레이션 기능은 강화했습니다. 이제 [뉴스 따라잡기] 코너에서 더 많은 이슈, 독보적 관점을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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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돌봄 시대가 오고 있다 2024. 3. 28.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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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병원 순례가 일상인지라 나 역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일이 점점 잦아진다. 그때마다 다른 보호자들을 관찰하게 되는데, 좀 티격태격한다 싶으면 영락없이 우리처럼 모녀지간이다. 상대적으로 며느리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반면에 병원 수발을 하는 아들은 많아졌다. 어머니 휠체어를 밀고 와서 접수하는 젊은 아들, 초고령의 아버지를 부축하며 천천히 걸어가는 고령의 아들도 보인다. 일본은 이미 가족 내 돌봄의 3분의 1을 남성이 담당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남성 돌봄에 대한 공식 통계가 없지만 내 주변엔 이런 사례가 적지 않다. 우선 60대 은퇴자인 지인은 은퇴와 동시에 파킨슨병에 걸린 장모를 아내와 함께 집에서 돌본다. 흔히 ADL(Activities of Daily Livig)이라고 부르는 식사, 보행, 용변, 목욕 등의 일상 돌봄은 아내가 맡고 있지만, 하루가 다르게 깜빡깜빡 인지가 저하되는 장모님의 말벗을 해드리고, 화초를 함께 가꾸는 등의 정서적 지원은 자기 몫이라 여긴다. 물론 기꺼이 수행하지만 그렇다고 은퇴 이후 꿈꿨던 제2의 인생이 미뤄지고 있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50대 직장인인 다른 지인 역시 2년간 어머니를 돌봤다. 이웃에 살던 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지면서 낮에는 다행히 주간보호센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밤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어머니 집으로 퇴근해서 어머니를 씻기는 등의 ADL 돌봄을 수행했다. 그런 자신에 대해 아내와 자녀들은 불만이 없었고, 멀리서 사는 여동생도 종종 부모 돌봄을 분담했지만, 고립되었다는 느낌, 자기 일상이 사라진 것에 대한 괴로움은 컸다. 40대 프리랜서인 후배는 외동아들이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어머니의 주 부양자가 되었고, 결혼해서 분가한 이후에도 집수리, 보험업무 등 본가의 대소사를 맡아서 했다. 그러다 어머니의 낙상과 골절, 입원 이후에는 간병까지 떠맡게 된다. 이성(異性)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고 용변 뒤처리를 하는 일은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당황했고, 간병인을 구한 이후에는 엄청난 간병비 때문에 난감했다. 그는 장차 어머니가 더 늙고 병들면 어떻게 될지 몹시 두렵다. 물론 며느리 돌봄 시대를 물려받은 것은 딸들이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딸의 돌봄은 18.8%로 며느리의 돌봄 10.7%를 훨씬 상회한다. 나 같은 K장녀의 독박 돌봄 이야기들이 차고 넘친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내가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면 아들의 간병은 성립하지 않는다"(히라야마 료, <아들이 부모를 간병한다는 것>)는 말처럼, 남성 돌봄 이면에는 여전히 여성의 그림자 노동이 숨어 있다. 돌봄의 젠더불평등은 여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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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돌봄서비스를 이용하며 재활치료는 받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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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가 아들 돌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이런 저출생·고령화·비혼 시대에 그것의 확대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며,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통적인 남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압력 때문에 공론장에서 논의되기 쉽지 않아서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남성의 돌봄은 그들이 자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으며 타인의 개입을 꺼린다는 점에서 블랙홀 같다고 한다. 다행히 이런 일을 먼저 겪은 일본에서는 다양한 대안이 나오고 있다. 2009년에는 '남성 돌봄 전국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2014년에는 한 치과의사가 '남성 돌봄교실'을 열었다. 그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더니 머리가 허옇게 센 중년 남성들이 진지하게 음식 먹이는 법, 기저귀를 가는 법, 자세 바꿔주는 법, 양치시키는 법 등을 실습하고 있었다. 우리도 남성 돌봄 시대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아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남성 돌봄의 이야기는 며느리의 돌봄, 딸의 돌봄, 영케어러의 돌봄과 겹치면서도 또 다를 것이다. 그 이야기를 잘 듣고, 공감하고, 배우고, 질문하면서 우리 사회의 돌봄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돌봄 사회는 남녀 모두 '보편적 돌봄 제공자'(낸시 프레이저)가 돼야만 우리 곁으로 다가올 미래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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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한 칼럼에서 이희경 문탁네트워크 대표는 일본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를 인용하며 '아들 돌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썼습니다. "남성의 돌봄은 그들이 자신의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으며 타인의 개입을 꺼린다는 점에서 블랙홀 같다." 비단 '부모를 돌봄'에 한해서만 이런 블랙홀이 나타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남자다움'에 익숙하게 길든 남성 중장년층이 블랙홀에 빠졌다는 신호는 고독사 문제에서도 강하게 울리고 있어요. 홀로 조용히 죽음을 맞는 고독사는 50~60대 남성에서 가장 많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돌봄'에도 약한 거죠. 이 역시 그 세대의 남성이 서로 도움을 구하고 관계를 맺는 데 서툴다는 점 때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사회적 고립 문제를 연구하는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 성인 남성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술값 내는 '주는 사람'으로서 자기 정체감이 있을 뿐, 받는 사람이 될 것이라곤 상상해본 적이 없(다)"라고 설명했어요. 그래서 도와달라고 세상밖으로 손을 내밀기보다는 자신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는 거예요. '남성 돌봄교실'처럼 비슷한 사정에 처한 남성들의 공동체가 있다면 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남성들이 '공동체' 자체에 일종의 거부감을 느끼도록, 적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사회화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간병 혹은 고독사 문제까지 갈 필요도 없이 그냥 남성인 저와 제 주변을 돌아보면요. 또 다른 중요한 돌봄, '자녀를 돌봄'만 봐도 이에 필요한 육아·교육 같은 정보의 교류는 대개 여성들의 모임인 '맘카페'에서 활발하게 일어나죠. 제 지인 중엔 자녀 교육 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몇몇 남성들의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모임이 뭔가 특이한 것이라도 되는 양 지인들 사이에서 이야깃거리가 되는 사실 자체가 돌봄 역할의 편중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더 많은 이야기를 공유해 달라는 요구를 받곤 합니다. 혼자 끙끙 싸매지 않아도 된다면서요. 홀로 답을 찾겠다고 죽어라 애쓰지 말고 좀 물어보라고들 합니다. 하다못해 길을 몰라 헤맬 때도 누군가를 붙잡고 질문하는 일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길든 걸까요? 혼자 알아서 하는 사람이 어른스럽다고 생각해왔지만, 어쩌면 남에게 기대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고, 그래야 강인하게 된다고 '남자다움'을 지독하게 학습한 결과이진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남성 해방>의 저자 옌스 판트리흐트는 "전통적인 남성성은 남성에게 이롭지 않다"고 말합니다. "남성들은 '나는 강인하고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다가 위기에 처한 뒤에야 이 문제(돌봄)를 인식한다. 그 대가는 '고립'"이기 때문이죠. 어떤 해방은 타고난 의존성을 인정할 때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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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남성의 돌봄은 전통적 남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압력 때문에 논의하기 어렵다. ✦ 2. 남성은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고 도움을 구하지 않아 블랙홀에 빠진다. ✦ 3. 그 대가는 고립이다. 타고난 의존성을 인정할 때 해방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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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병' 앓으며 떠올릴 법한 질문이네요.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 바빌로니아 문명에 원래 '토목화일금수월'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월화수목금토일'이 된 걸까요? |
경상북도 청도에선 '소싸움', 즉 소끼리 싸움을 붙이는 대회를 민속행사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유산 지정을 보류하며 동물학대, 전승 과정 등을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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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차는 수소와 산소로 전기를 생산해 오염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습니다. 수소를 딱 한 번 충전하고 2800km를 달린 열차가 나왔습니다. 서울과 부산을 7번 오가는 거리입니다. |
영화엔 로봇이 인간의 외형뿐만 아니라 말투와 행동을 그대로 복제해 다른 인간을 속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챗GPT 개발사의 신기술을 보면 음성 모방은 곧 가능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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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막 직장에 다니게 된 사회초년생입니다. 높은 업무 강도와 이따금 느껴지는 상사의 권위 의식에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오늘의 레터는 용기와 끈기를 갖게 합니다. 절대 도망치지 않는 송은이와 김숙. 도망치기는커녕 새로운 길을 만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해내보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여성이 더 큰 세계로 나가길 바라봅니다. (커리됴아님)
📬 저는 누칼협 이전에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남성 예능 구조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무한도전, 1박2일,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은 누군가에게 벌칙을 주고 그게 나만 아니면 된다고들 얘기했죠. 그게 심해진 게 누칼협이다 싶어요. 누칼협은 개인주의적이고 파편화되어 남을 외면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굳이 남의 상황과 선택을 비하하거나 비난하는 것 같아서 더 마음이 불편한 요즘입니다. 사회적 연대나 합의는 꿈꿀 수조차 없어진 것 같아요. (y님) 📬 송은이&김숙 같은 예능인이 다른 분야에서도 계속 나오길 기대하면 제 욕심인 걸까요. 이단아들에게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공정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기회만이라도요. (익명의 독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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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점선면Lite <👽 절이 싫어도 안 떠나는 중>을 읽고 보내주신 독자님들의 이야기예요. 리아님께서는 '점선면에서만 말할 수 있는 주제였고, 점선면의 구독자라서 기쁩니다'라고 전해 주셨어요! 점선면팀도 이렇게 진지하고 열정적인 독자님들과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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