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커피숍, 쓸쓸한 1인 가구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글이 잘 나가지 않을 때, 그러니까 생각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거나 여기저기로 달아날 때, 애초에 떠올랐던 한 문장을 중얼거리는 습관이 있다. 궁여지책이다. 최근에는 ‘집이 집에 없다’ ‘죽음이 죽었다’라는 문장을 웅얼웅얼한다. 전후 맥락을 제거하면 말장난 같은 문장, 간지럼을 태우는 것 같은 불쾌한 문장이다.

집이 집을 나갔다? 계기가 없지 않았다. 커피숍이었다. 몇 년 새 커피숍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학교 정문 앞은 물론이고 후문 주택가에도 한 집 건너 커피집이다. 도심 곳곳에서도 커피숍 간판과 마주친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게 된 거지? 수시로 자문했지만 자답은 쉽지 않았다. 대기업의 공격적 경영, 자영업자의 증가와 같은 배경 설명은 2% 부족해 보였다. 그러다 떠오른 것이 집이었다.

[녹색세상]화려한 커피숍, 쓸쓸한 1인 가구

커피숍의 ‘폭풍 증가’는 집의 형태가 달라진 사태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1인 가구 400만, 비정규직 800만 시대. 1인 가구 수와 비정규직 수는 많이 겹칠 텐데, 이들이 주로 사는 ‘집’이 오피스텔(원룸)이나 옥탑방, 반지하, 고시원이다. 하지만 집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집안’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은 있지만 가정이 없는 것이다. 유럽의 사회학자 바우만이 지적했듯이 현대인의 집은 물품보관소로 바뀌었다. 우리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실내가 비좁아 물품을 보관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불 꺼진 집 앞에 우두커니 서 있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어두운 집에 혼자 들어가 불을 켜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를…. 불안한 일자리와 불 꺼진 집 사이에서 1인 가구는 외롭다. 고용 없는 성장, 승자독식사회에서 1인 가구는 쓸쓸하다.

외롭고 쓸쓸하되 ‘높지’는 못한 젊은이들의 일과 숙소 사이에 커피숍이 있다. 1인 가구는 불이 환하게 켜진 커피숍으로 들어간다. 친구를 불러내 술자리를 갖고 싶지만 지갑이 가볍다. 커피숍에 앉아 스마트기기를 만지작거리는 것이 훨씬 편하다. 누구를 만나는 일 자체가 부담스럽다.

일과 휴식, 낮과 밤 사이에 경계의 장소, 즉 1차 장소가 있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교차하는 장소. 광장, 공원, 시장, 마당, 우물가 같은 곳 말이다. 느티나무 아래 평상, 오래된 단골집 또한 훌륭한 1차 장소였다. 하지만 산업화, 도시화, 세계화를 숨 가쁘게 통과해오는 동안, 우리는 저 경계의 장소를 다 없애버리고 말았다. 1차 장소가 추방되는 사이 집이 집을 나갔다.

안방이 안방에서 나가자 출산이 집 밖으로 나갔다. 집이 집을 나가자 손님이 찾지 않았다. 돌잔치와 집들이, 결혼식, 생일잔치가 다 나갔다. 급기야 죽음도 집을 나갔다. 죽음이 집 밖에서 저 혼자 죽어가기 시작했다. 요양병원, 임대아파트, 단칸 셋방에서 죽음이 홀로 죽어갔다. 죽음이 삶을 간섭하지 못하고, 삶이 죽음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음이 제대로 죽지 못했다. 죽음이 제대로 죽지 못해서 삶이 온전해지지 못했다. 삶이 상스러워졌다.

커피숍이 사무실, 응접실, 서재, 베란다를 대신하고 있다. 삶이 일보다 작아져서 그렇다. 생활이 생존보다 작아져서 그렇다. 사회가 시장(경제)보다 작아져서 그렇다. 국민이 국가보다 작아져서 그렇다. 국가가 신자유주의보다 작아져서 그렇다. 오늘 저녁에도 몇 천원을 아끼려고 커피숍을 외면하고 불 꺼진 옥탑방으로 향하는 1인 가구가 있을 것이다. 오늘 밤에도 빛바랜 가족사진을 손에 들고 이를 앙다무는 독거노인이 있을 것이다.

이른바 ‘국민행복시대’가 5개월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집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죽음이 삶에게, 삶이 죽음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있다. 7월18일 오늘은 유엔이 정한 ‘세계 넬슨 만델라의 날’이다. 만델라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고 한다. “국가는 높은 계층의 시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계층의 시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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