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만큼이나 무서운 핵불감증

최성각 |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옆 나라의 아베 신조가 희색이 만면하다. 선거에서 압승을 했단다. 대단찮은 투표율을 보면 그 나라의 정치 혐오증도 여간 깊지 않은 듯한데, 그 점에서는 주류 언론의 야무진 외면 속에서도 시국선언이 늘어나고 촛불이 다시 켜지고 있는 우리나라가 훨씬 건강한 편이긴 하다.

역사를 거칠지만 간명하게 요약하라고 한다면, 어떤 답이 비교적 수긍에 값할까? “인간의 역사는 대개 소수 권력자가 다수를 지배하고 착취해 왔다”라는 답이 아닐까. 그리고 “그럼에도 ‘다수 중의 소수’는 끝없이 소수 권력자에 저항하기 위해 다수와 어깨동무를 하며 고군분투해왔다”, 대충 그렇게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국가가 군주의 사유재산이던 시절에도 그랬고, 한시적 선출직을 국가의 대표자로 거푸 뽑게 된 근대국가도 힘의 행사라는 측면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하면 너무 냉소적인 역사관일까. 그나저나, 압승의 반대말이 뭘까? 참패라고 하자. 나는 아베와 상관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아베가 참패하기 바랐다. 거장 미야자키는 최근에 신작 애니메이션을 내놓으면서, “아베 정권의 역사감각 부재에 질렸다”며 9조(평화헌법)를 개정하려는 그의 야심을 ‘사기’라고까지 극언했다. 노장은 덧붙였다. “생각이 부족한 인간은 헌법 같은 것을 건드리지 않는 게 낫다”고.

[녹색세상]핵만큼이나 무서운 핵불감증

왜 나는 아베가 이기지 않기를 바랐을까. 한촌(閑村)의 대단찮은 선비가 오버한다고 볼지 모르지만, 인류의 일원으로서 나 역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피폭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방사능 오염수를 대양에 유출하고 있는 일본에서 배울 게 없다는 것은 진작부터 판명된 일이긴 하지만, 이제 마음 놓고 강국을 향해 치달릴 아베가 두렵다. 윤리나 죄책감 등 인간의 귀한 감성들을 늘 묵살해왔던 강국이 갔던 길이 예외 없이 전쟁 획책이었기 때문이다. 강국을 향해 매진할 아베 정권이 원전정책과 관련해 건강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원자력은 그나마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개념에서 출현한 당의정 같은 완곡 표현이었다. 이제 아베에게 핵은 핵분열 에너지를 통한 전력 창출 개념이 아니라 핵무장, 그 자체로 수렴되기 십상일 것이다.

‘3·11’ 동일본 대지진 2주년 즈음에 한홍구, 서경식, 다카하시 데쓰야 세 분이 좌담을 했고, 그 내용이 <후쿠시마 이후의 삶>이라는 책으로 묶였다. 주제는 실로 절박하고, 우려는 심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고, 전망은 어둡지만 그런 파국적 상황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당위는 가슴을 쳤다. 그 책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핵을 이토록 대수롭지 않게 여길까, 의문의 실마리가 특히 한홍구 교수의 회고를 통해 풀렸다. 그것은 바로 맥아더 숭배와 그 여러 연원과 무관하지 않았다. 1960년대 초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맥아더가 핵을 썼더라면 북진통일이 완수됐을 것이라고 배웠고, 운동장의 맥아더 동상을 우러러보았다. 한 교수는 거기에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해방을 가져왔다는 ‘원폭 정당화’ 인식이 은연중에 우리 속에 잠복해 있지 않겠는가, 그런 말도 덧붙였다.

그러니 핵발전소에서 오래전부터 짝퉁 부품을 쓰고, 핵 ‘깡패’들이 그 범죄를 철저하게 은폐하고, 마침내 줄줄이사탕처럼 그 비리가 연일 폭로됐어도, 비록 ‘천인공노할 짓’이라는 총리의 때늦은 수사적 격앙을 시발점으로 시방 조사 중이라곤 하지만, 우리가 그 범죄자들에 대해 이토록 관대하구나, 깨닫게 됐다. 모든 정권이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정권도 친원전 정책을 고수하는 정권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늘도 분기할 범죄로 인해 이젠 KBS 뉴스에서조차도 ‘핵마피아’라고 앵커가 말하는 시절이 왔으니 바른 표현을 얻었다고 기뻐해야 할까. 질질 끄는 이번 조사가 그 범죄를 발본색원할 만한 결과를 내놓을지, 그리하여 마침내 원전정책의 수정까지 이를 수 있을지 고대해도 될까. 역시나, 이 또한 무망한 고대일까. 핵에 대한 무관심과 불감증은 핵만큼이나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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