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게놈시대와 사람

강금실 | 사단법인 선 이사장
[강금실 칼럼]포스트게놈시대와 사람

얼마 전 분자유전학을 전공한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가 <생명>(2014),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2017)라는 두 권의 생명과학 관련저서에 이어서 세 번째로 <송기원의 포스트게놈시대>(사이언스 북스)라는 책을 냈다. 과학책은 읽어도 제대로 이해된 지식이 머릿속에 남는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분명하게 깨우친 게 있다면 첫째로 책 제목이 알려주듯이 지금이 ‘포스트게놈시대’라는 사실이다. 물론 DNA라든가 유전자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요즘 텔레비전 가족드라마를 보면 가장 자주 등장하는 설정 중 하나가 유전자검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2000년대 초 인간 DNA 정보 전체인 유전체(genome) 지도가 밝혀졌다고 한참 떠들썩했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2003년에 게놈지도가 완성됐고 그 이후를 포스트게놈시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는 커다란 현상 중에 가장 최근의 일이 인간유전체와 관련돼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시대를 상징하는 말이 뭘까를 떠올려볼 때 포스트게놈시대라는 말을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기후변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한반도평화, 그리고 양극화 그 정도 아닐까 싶어서이다.

[강금실 칼럼]포스트게놈시대와 사람

두번째로는 2016년 이후부터 게놈지도를 읽고 활용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쓰기(The Genome Project: Write)에 도전하는 중대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험실에서 인간유전체를 구성하는 DNA 정보 서열 전체를 합성해서 작동 여부를 시험하겠다는 것인데, 쉽게 말해서 인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2016년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합성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대가인 과학자들, 의료인들과 법률가, 기업인 등 약 150명이 모여서 향후 10년 내에 인간 유전체 합성이 가능한지를 논의하는 회의를 했고, 이 회의가 전환점 역할을 했다. 송 교수 표현에 따르면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다.

세번째로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생명과학기술이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생명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순수과학 연구와 이를 응용하는 기술은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실험실에서 나온 연구결과가 즉각 기술로 응용되어 인체를 비롯한 생명체에 직접 적용되는 시대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와 응용의 일체화현상과 관련해서는 유전자가위기술(CRISPR-Cas9)에 관한 국내 생명윤리법개정안 발의상황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8월 한국과학자에 의해 미국에서 실험결과 유전자가위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배아에서 유전체를 성공적으로 교정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곧바로 그해 10월에는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과학자 출신 의원의 발의로 제출되어 국회계류 중이다. 생명윤리법(47조) 내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제한 때문에 유전자가위기술 연구를 국내에서 진행할 수 없으니 사실상 전면 풀어달라는 취지인데, 연구가 즉각 상품화로 응용되는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 비춰본다면, 이런 개정안은 배아세포를 활용한 치료제 개발과 상용화의 관점에서 검토돼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별 관심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이제 2018년도 저물어 2019년을 바라다보는 지금, 돌이켜보면 2000년에 새 밀레니엄이라 해서 세계가 엄청나게 환호하고 시끄러웠던 게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광화문에서 ‘생명의 빛’ 불꽃축제 등 여러 축하행사가 열리고 DMZ2000 퍼포먼스도 열렸는데, 그사이 DMZ는 종전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새 밀레니엄 시기의 윤곽은 21세기 초에 불과한 지금 이미 다 그려진 것 같기도 하다.

가장 크게 현실로 들이닥친 새 밀레니엄의 과제는 기후변화대응이다. 2018년 10월에 인천 송도에서 열린 IPCC 총회에서는 21세기 말까지 지구의 평균온도상승폭을 1.5도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5%로 줄여야 하고, 2050년까지는 0%인 ‘넷제로Net-Zero 시대’로 돌입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신기술, 나무 심기, 재생 숲 조성, 토지회복 등 모든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해서 아주 넓은 범위에서 최대한 빠르게 시작해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기후변화대응에 성공해야 그 이후의 인류 지속을 기대할 수 있다. 1.5도를 넘을 경우에는 전 지구적으로 산악지대의 영구동토층이 녹아 매장된 온실가스가 방출될 가능성이 결정적인 위험요소가 된다.

한편 2015년 나사는 화성여행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2017년에는 UAE가 2047년부터 화성이주계획을 실행한다고 발표했는데 이와 같은 지금 시기 우주여행과 이주에 관한 꿈은 물론 계속되는 성장의 꿈이 기후변화대응과 맞물려 어떻게 조응하는 것인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지난 시대와는 달리 큰 시대적 과제와 비전들이 제각각 분열된 채로 확장되고 진행되는 것이 새 밀레니엄시대의 특징이기도 한 것 같다.

21세기를 넘어 새 천년을 내다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문제이다. 특징적인 것은 기술과 경제성장이 선사한 진보의 꿈과 폐해의 양면을 겪고 있는 것이지, 인간의 생각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상상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다.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SF영화에서도 사랑, 책임과 같은 관계적 의미망은 그대로이다. 인간이 우주로 이주할 경우 다행성종으로 더 진화할 가능성은 있지만, 지구 생명계로부터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로서 발생학적 역사를 갖고 있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 인간의 정의이다. 생명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인간을 만들 수 있는지 도전하고 예상대로 2026년까지 그 도전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닌 제3의 합성생물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생명과학의 도전은 사람이 아닌 사람의 등장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시계열적·공간적·사회적 삶을 근간에서 뒤흔드는 가장 근본적 과제이다. 현재의 사회를 유지하는 인간이 아니라 다른 정의의 합성생물체로서의 사람의 등장에 마주쳐서 이를 사회구성원으로 새로 정의하고 추가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인간 사회를 유지할 것인지 생명과학의 한계설정에 대해 관심을 갖고서 깊이 폭넓게 생각하고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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