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단것 당기는 시간들

당 권하는 사회. 한때 매운 음식 권하는 사회에서 이제는 당이다. 모두 스트레스와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스트레스가 매운 음식과 당을 요구한다는 사회적, 의학적 연구 결과를 내놓곤 한다. 개인적으로도 충분히 느낀다. 비록 설사를 할지언정 미친 듯이 매운 닭발을 뜯고 떡볶이를 흡입할 때가 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다. 속은 쓰리지만 머리꼭지가 벗겨질 것 같은 쾌감이 몰려온다. 문제는 ‘혈중 매운 농도’가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매운맛의 마력이 뚝뚝 추락하고 나면 허탈해진다. 그래도 땀 한번 흘리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힘을 얻는다. 매운 것도 먹었으니, 자 이제 한번 또 해보자고, 이러면서. 우리는 늘 그렇게 막막한 세상에 부딪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단것 당기는 시간들

설탕도 그렇다. 매운 것 못지않게 갈망의 농도가 우리 몸에 부표처럼 떠다닌다. 일정한 당의 용량을 원하는 것 같다. 굵직한 기억으로는 군대 시절의 한 토막. 이등병 시절에 휴가를 나왔다. 나도 모르게 동네 슈퍼에 가더니, 커다란 젤리 한 상자를 집어들‘더란다’. 따옴표를 한 건, 나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목격한 누나의 진술이었다. 대체로 군대의 졸병은 단것을 심하게 찾는다.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넘는 까닭일 것이다. 병영생활에 적응한 말년 사병이 무의식적으로 젤리를 찾지는 않을 것이다. 군인도 아닌 나는 이런 일을 자주 겪는다. 얼마 전에는 술을 한잔 마시고는 역시 ‘나도 모르게’ 편의점에서 초코파이 한 상자를 사서 그 자리에서 먹었다. 여러 가지 피곤한 일이 많았다. 술을 마시자 나도 모르게 당에 대한 갈망이 솟구쳤던 셈이다.

어렸을 때 찬장 구석에는 어머니의 비장의 양념이 몇 가지 숨겨져 있었는데 그중에는 설탕도 있었다. 1970년대는 이미 설탕 값이 충분히 싸져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더운 여름에는 설탕 두어 숟가락을 퍼서 스테인리스 대접에 담은 찬물에 풀어 마시기도 했다. 일종의 청량음료 대용이었다. 우리 나이 또래는 설탕에 충분히 노출되어서 살았다. 세계의 설탕은 더 이상 비싼 재료가 아니었다. 하지만 인류는 오랫동안 설탕이 없거나, 있더라도 귀한 시절을 보냈다. 중세에 중국 남부에서는 사탕수수가 재배되면서 설탕 맛을 볼 수 있었다. 조선은 설탕의 청정지대에 가까웠다. 왕과 그 일가나 되어야 설탕 맛을 보았다. 기록에는 명나라 사신이 조선 임금 단종에게 설탕 한 상자를 바쳤다고 쓰고 있다. 조선은 맥아당과 꿀로 당을 만들어 썼다. 특히 맥아당은 식량인 곡물에서 얻어야 하므로 엄격하게 통제되고, 만들더라도 비싼 재료였다. 그러니 그 시절 스트레스는 뭘로 풀었을까 싶다.

요즘 가장 뜨고 있는 음료는 흑설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마셔보니, 원당의 구수한 맛이 나서 괜찮았다. 요는, 이 음료가 너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프랜차이즈 가맹을 받는 회사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유행이 얼마나 갈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다들 한 종목에 쏠리고 유행은 사라져 버린 쓰라린 경험이 한둘인가. 음식료업계는 이 부분에 트라우마가 있다. 한번 냉정히 봐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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