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복권운동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2013년 9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2013년 9월16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매체에서 느닷없이 10년 전 한명숙 전 총리 수뢰 사건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당시 재판에서 검찰이 증인들의 증언을 조작했다는 것. 증언을 조작당했다는 당사자들이 언론 인터뷰에 나서고, 이를 신호탄으로 여기저기서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한명숙 전 총리에 동병상련”을 느낀다며 그 사건의 “재심운동을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실제로 당시 검찰 수사는 명백히 정치적이었다. 1심에서 무죄가 나오자, 검찰에서 바로 ‘별건 수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눈앞에 닥친 서울시장 선거에 영향을 끼치려는 정치적 기동임에 분명했다. 오죽하면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소속 김성식 의원마저 적어도 선거가 끝날 때까지라도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겠는가. 그런데 바로 그 수사에서 한 전 총리가 그만 덜컥 덜미가 잡혀버리고 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한명숙 전 총리까지 정치검찰에 희생양이 된 셈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었으니 ‘친노’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을 게다. 2015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을 때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집권 3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이번에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데에는 총선 압승이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정치적 배경을 가진 수사였지만 한 전 총리에게 적어도 3억원이 전달된 것은 당시 대법관 전원의 일치된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문세력이 한 전 총리가 ‘무죄’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마도 그 정도의 금품수수는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당시 정치권에 널리 퍼진 관행이라고 보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통치권자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정도의 비리는 피차 덮어주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게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대선 전에 이른바 ‘김대중 비자금 의혹 사건’의 수사를 중단시킨 바 있다. 그 문제에서는 본인도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신사협정(?)을 깨뜨린 사람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전직 대통령에 대한 그의 공격은 몇 년 후에 부메랑이 되어서 자신에게 돌아왔다. ‘원한과 복수’가 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린 것이다.

여권의 한명숙 구출 작전은
권력형 비리수사 예봉 꺾으려
재심하려다 재수사로 선회
깔끔하게 재심청구로 가고
그럴 자신 없으면 입 다물길

지금 여당과 친여 매체가 손잡고 벌이는 한명숙 구출작전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한 전 총리의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주는 것으로, 이는 VIP 관심사안이기도 하다. 일종의 ‘손타쿠’ 운동인 셈이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검찰개혁’의 명분으로 검찰을 공격함으로써 선거 뒤로 미뤄뒀던 권력형 비리 수사의 예봉을 꺾는 것이다. 경기도지사까지 숟가락을 얹는 것을 보면, 곧 대대적인 캠페인이 시작될 모양이다.

이 운동을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은 애매하다. (1)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은 적 없는데 조작된 증거와 증언 때문에 유죄가 됐다는 얘기인지, (2) 돈은 받았지만, 검찰의 수사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이 애매함은 물론 ‘의도’된 것이다. 당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현재의 검찰을 공격하고, 내친김에 그의 명예까지 회복시켜 주겠다는 속셈이다. 하지만 이 기획은 실현이 불가능해 보인다.

먼저 지금의 검찰과 당시의 검찰은 별 관계가 없다. 윤석열 총장은 외려 그런 구(舊)검찰의 ‘안티테제’로 자신들이 임명한 인물이다. 당시 수사를 맡은 이들은 지금 검찰에 남아 있지 않고, 윤석열씨가 ‘기수 파괴’로 총장에 임명될 때 구검찰의 고위직들은 줄줄이 옷을 벗었다. 한 전 총리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1억원짜리 수표가 동생의 전세금으로 사용된 사실을 뒤엎을 물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증거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당에선 ‘재심’에서 ‘재수사’ 쪽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다. 성동격서식으로 변죽이나 울리며 검찰만 두드리겠다는 얘기인데, 이 대목에서 마침 이재명 지사가 ‘재심운동’을 응원하겠다고 귀한 말을 보탰다. 당시 문재인 대표도 ‘재심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오면 인정하겠냐’는 질문에 “그럴 수밖에 방법이 없겠죠”라고 답한 바 있다.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자. 깔끔하게 재심 청구로 가고, 그럴 자신 없으면 입을 다물라.

※경향신문 2020년 6월1일자 29면 ‘진중권의 돌직구’ 칼럼에서 전직 대통령을 언급하며 직책에 오자가 그대로 실렸습니다. 유족과 재단, 재단 회원 그리고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