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들의 절박한 외침, ‘온전’하게 들으시라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요즘 부쩍 피해자와 당사자, 활동가의 구별에 대해 생각한다. 청년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는, 청년문제 해결의 당사자가 되길 원하는 청년 활동가다. 청년문제가 지금 우리 사회가 복합적으로 겪고 있는 구조적 불평등의 한 현상이라면, 나는 이 불평등한 구조의 피해 당사자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세 정체성에 뚜렷한 구분을 둘 수 있을까.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최근 청소년 활동가들과 대담할 기회가 있었다. 그날 만난 활동가들은 기후위기, 청소년 참정권, 여성인권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었다. 누구보다 예민하게 세상을 감각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감수성 떨어지는 실언을 하지는 않을까, 식은땀이 절로 났다. 아니나 다를까 엉뚱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그레타 툰베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영겁과 같은 5초였다. ‘갑자기요?’ 하고 묻는 듯한 표정을 보자마자 잘못된 질문임을 알았다. 단지 10대라는 공통점 하나를 가진 인물, 질문에는 별 맥락도 없었다. 그의 활동방식, 그의 활동이 세계와 우리에게 끼친 영향, 그를 소비하는 기성세대의 잘못된 방식, 뭐 이런 질문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대담자들은 노련했다. “그레타 툰베리를 다루는 기사 제목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뭔 줄 아세요?”라는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16세 소녀, 10대 소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에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다. 이것을 알려주며 “우리의 절박함이 기특함으로밖에 보이지 않나 봐요”라는 말도 했다. 똑똑한 청소년이라면서 활동을 기특해하다가, 정치의 영역에서 제도적 변화를 요구하기 시작하면 “되바라졌다” “더 공부하고 오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결국 세상에 드러난 건 피해자의 모습뿐이었던 셈이다.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를 해결하라는 활동가가 아니라, 기후위기에 더 민감하게 피해를 호소하는 ‘어린 피해자’의 목소리에 더 열광했다.

피해를 앞세우는 이야기 방식은 의제를 납작하게 만들기 쉽다. 얼마나 피해를 받았는지,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건지, 보상을 위한 피해의 정도는 어떻게 입증할 건지, 정도의 논의만 뒤따른다. 피해자는 철저히 ‘보상’이라는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수혜자로만 드러날 뿐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성’에 대한 잡음도 생긴다. 정말 그 피해자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는 논의로 넘어가면, 피해에서 발돋움해 사회 변화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기는 쉽지 않다.

청년의 영역도 다르지 않다. 청년단체의 상근자로 일하면서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전화는 이런 거다. “지·옥·고에서 생활하는 청년과 인터뷰하고 싶은데요.” “알바하며 등록금 버는 대학생을 연결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 청년주거와 교육부채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다. n포세대로 일컬어지는 무기력한 청년의 현실은 세대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청년문제에 공감한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듯 포르노처럼 청년빈곤을 소비하고 나면 남는 것은 누가 ‘진짜’ 청년이냐는 질문이다.

청년(靑年)이라는 단어는 태생적으로 특정 이미지를 내포한다. 주로 발랄하거나, 미숙하거나, 미숙한데도 불구하고 당당하거나, 그래서 불편하거나. 미숙함의 기준과 정의에 따라 반박의 여지가 있지만, 누군가의 관점에서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계급적, 성적 정체성 등 수많은 정체성을 뒤로한 채 그저 나이 구별일 뿐인 ‘청년’이라는 한 집단의 모습은 위처럼 쉽게 하나로 좁힐 수 없다. 청년의 경험은 피해자성에 갇혀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피해자보다 당사자로서의 말에 주목하고 싶다. ‘피해’가 아닌 ‘경험’에서 변화의 논의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당사자가 곧 활동가이며, 이들의 활동은 본인이 서 있는 자리를 더 좋게 만들려는 발돋움이다. 나의 작은 자리에서 시작해 이 사회를 바꿔보려는 당사자들의 절박한 외침이다.

모두가 이 외침을 ‘온전’하게 듣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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