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희 변호사
[조광희의 아이러니] 정치의 언어

여름의 끝이 보이는데, 코로나19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수그러들기는커녕 다시 확산되고 있다. 아주 작은 구멍만 생겨도 순식간에 퍼져가는 바이러스의 생명력이 놀랍다. 백신이라는 근본적 해결책 없이는 관리만 가능할 뿐 종식을 기대할 수 없어 보인다. 이 와중에 안타까운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말이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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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자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승리가 임박했다고 여러 번 공언했으나, 허무한 말잔치에 그쳤다. 처음 들을 때는 기대를 가졌고, 다시 들을 때는 긴가민가했다. 어느 시점부터는 오히려 불길한 전조처럼 여겨진다. 그런 발언의 반복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흔들린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판단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질병관리본부의 신중하고 중립적인 언어와 대비되니 더 난감하다.

물론 정치언어는 과학언어와 다르고, 행정언어와 다르다. 언어세계의 한끝에 수학언어가 있고 다른 끝에 문학언어가 있다면, 정치언어는 상대적으로 문학언어에 가까이 있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권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정치언어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 걸쳐 있기도 하다. 정확한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정치인만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정치언어가 남용되거나 경계를 훌쩍 넘어서면 대중은 냉혹해진다.

코로나19와 대치하며 사용된 정치언어의 패턴은 두 가지다.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며 각오를 보여주는 방식과 ‘이기고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두 방식 모두 정치지도자가 흔히 사용할 수 있는 레토릭이다. 만일 실제로 전쟁 중이라면, 그런 헛말은 심지어 필수적이다. 전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이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30%입니다”라고 말하거나, “낙동강 사수는 솔직히 불가능합니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다. 아무리 진실이라 하더라도 그런 언어로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다. 국민의 사기는 진작시키고, 적의 사기는 꺾는 것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코로나19와 전쟁 중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전쟁과 똑같지는 않다. 바이러스를 박멸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사기 진작보다 국민의 냉정한 인식을 촉구하는 게 중요하다.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게 핵심인 것이다. 결사적인 의지를 천명하거나 승리가 임박했다고 선언함으로써 바이러스의 사기를 꺾을 수도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바이러스는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조건에 따라 무심하게 확산되고 복제될 뿐이다.

정치언어의 문제점은 다른 골칫거리인 부동산에서도 드러난다. 정치인들은 부동산을 상대로도 전쟁 중이다. 시장에 대해 기필코 승리할 것이라는 결의가 쏟아지고,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자기만족적인 예언이 난무한다. 물론 부동산시장은 바이러스와 또 다르다. 전쟁과 유사하게 시장참여자들의 심리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싸움 또한 정확하게 전쟁과 같지는 않다. 반드시 이기겠다고 선언하여 시장에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잡았다고 선언한다고 집값이 잡히는 것도 아니다. 시장의 움직임은 훨씬 미묘하고,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너무나 많다.

바이러스와 부동산시장에 대처하는 정치언어는 사령관의 언어와 달라야 한다. 결기를 보이기보다는 시민들에게 이 싸움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명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게 바람직한가를 설득해야 한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선언하기보다는, 힘겨워도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는 게 중요하다. 바이러스와 부동산시장을 다루는 정치언어의 신뢰는 이미 상당히 훼손되었다. 정확한 현실인식을 각오와 낙관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국민도 고통을 겪고, 정치지도자도 대가를 치르게 된다.

정치언어는 행정언어보다 어렵다. 훨씬 더 높은 차원이 필요하다. 그 복합성과 섬세함은 예술에 견줄 만하다. 의지를 천명하면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희망을 주면서도 호도하지 않는 정치언어, 그것이 절실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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