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수를 욕보이는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이 국토교통위에서 활동했던 지난 5년 동안 그의 가족의 건설사들이 피감기관인 국토부와 그 산하기관들로부터 1000억여원을 수주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지자체들로부터도 총 480억원이 넘는 공사를 따냈다고 한다. 누가 봐도 피감기관들의 ‘뇌물성 일감몰아주기’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민주당 측 인사들이 연루된 비리는 주로 신라젠, 라임펀드, 옵티머스 등 ‘금융자본주의형’ 비리, 즉 고정자본을 갖지 못한 젊은 세대의 벤처형 비리였다. 반면 박덕흠 의원의 경우는 고정자본을 소유한 늙은 세대의 ‘산업자본주의형’ 비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한 세대 이전의 후진적 비리인 셈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문제는 애초에 공당에서 이런 이에게 공천을 줬다는 데에 있다. 건설업을 하는 엄청난 자산가가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려 한다면, 그 의도와 동기는 빤하지 않은가? 최소한 이해충돌이 예상된다면 당에서는 미리 경계를 했어야 한다. 그런데 견제는커녕 아예 국토교통위로 보내줬으니, 그 자체가 스캔들이다.

국민의힘은 박 의원을 당장 제명해야 한다. 최근 그 당은 합리적 보수로 변신하려고 애를 쓰는 것으로 안다. 그것을 평가한다. 하지만 그 모든 수고가 이 사건 하나로 수포로 돌아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당에서는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 이전에 먼저 사태에 대해 명확한 정치적·윤리적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

비위 사실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고
철저한 검증과 감찰 시스템으로
비위의 재발을 막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박덕흠 제명으로
‘경제민주화’ 약속 입증해야

물론 ‘비리’가 있었다고 아직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론의 ‘의혹 제기’를 무책임하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의심은 합리적이면 되지 언론에서 그것을 입증할 책임까지 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입증은 권한을 가진 경찰이나 검찰이 해야 할 일이고, 의혹을 사실로 여길지 안 여길지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공인에 대한 검증은 철저해야 한다. 가혹한 검증을 통해 오직 공적 임무에 충실한 이들만 살아남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역할 중 하나다. 공직이 어디 잡것들이 꿀 빠는 자리여서는 안 된다. 언론의 검증을 통과할 자신이 없거나, 그 가혹함을 견딜 의사가 없는 이들은 애초에 공직에 나서면 안 된다.

박 의원 측에서는 “당선된 이후 가족회사 경영에 일절 관여한 바가 없기 때문에” 이해충돌이라 할 수 없다며 “갖고 있던 주식도 모두 백지신탁”했다고 해명했다. 모든 게 합법적이었다는 변명이리라. 그 얘기는 검찰에 가서 하고, 그가 국민 앞에 해야 할 일은 ‘사퇴’로 자신의 처신에 윤리적 책임을 지는 일이다.

‘무죄추정의 원칙’ 운운하는 소리는 다시 듣고 싶지 않다. 유죄판결에는 합리적 의심을 모두 배제할 정도의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 하지도 않은 게 빤한 공사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판결이 내려지지 않던가. 유무죄 여부가 공직윤리의 기준이어서는 안 된다. 공직에 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야당에 박덕흠 의원이 있다면 여당에는 이상직 의원이 있다. 중요한 것은 비리를 저질렀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소속 의원이 비위를 저지른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 이는 이미 통제의 범위를 벗어난 일이지만,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아직 통제 범위 안에 있는 일이다.

비위는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부끄러운 것은 비위를 애써 감추거나 감싸는 것이다. 이 정권 들어와 공직윤리의 기준이 무너졌다. 문서위조로 자식을 학교에 보내거나 돈을 받고 교수직을 파는 일 따위는 이젠 비리 축에도 속하지 못한다. 반대편에서까지 똑같은 광경을 목격하고 싶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위의 재발을 막는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 부적격자를 공천과정에서 솎아낼 수 있었고, 국회 상임위를 배정할 때 또 한 번 걸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당 안에서 인사검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당내에 철저한 검증 및 감찰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국민의힘은 정강·정책으로 ‘경제민주화’를 표방하고 있다. 박덕흠 의원의 사례는 그 정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악질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를 제명함으로써 ‘경제민주화’가 선거용 슬로건 이상의 것임을 입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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