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나

여러 전망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및 북핵 관련 외교정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말이다. 취임 초기이다 보니 대부분의 분석들은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그 ‘변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해는 되는데, 사실 현상타파를 원할수록 잘 변화하지 않는 현상유지 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새삼 다시 떠오르는 기억은 1993년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루크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당시 국방부(Pentagon) 내부를 관광할 기회가 있었는데 일단 놀란 것은 건물의 크기였다. 5층 건물에 불과하지만 바닥면적(floor area)의 규모가 당대 세계 최고층이었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3배가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더욱 놀란 것은 그 큰 건물을 짓기 시작한 때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선언하기 이전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하기 석 달 전인 1941년 9월11일에 착공했다. 이후 단 16개월 만에 완공됐다는데 그 큰 규모로 보아 전후의 세계 패권질서 재편에 미리 대비한 것이라고 느꼈다. 당시 이 국방부 건물과 거의 맞닿아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도 방문했는데 끝없이 이어진 수많은 묘비석에 또 놀랐다. 대략 40만기라는데 ‘위대한 미국’ 건설에 이토록 많은 희생이 필요했던가 싶은 느낌이었다.

사실 전후 미국 패권의 핵심 축은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다. 물론 달러를 기반으로 한 경제력과 과학기술 우위 등도 분명 미국 힘의 원천이지만, 역사적으로 보자면 국방 및 안보 분야가 최정점에 있고 경제와 과학기술이 이를 뒷받침하는 구조로 발전해왔다. 그 결정적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이다. 1939년의 미군 숫자는 33만명 정도였는데, 1945년 8월 종전 시엔 1200만명을 넘어선다. 같은 기간 국방 관련 지출도 급격히 늘어나는데 연간 7억달러 정도이던 군비가 1940년에 360억달러로 증가하고, 1943년과 1944년의 경우엔 국내총생산(GDP)의 40%를 넘어선다. 국방부(당시 전쟁부)는 그 막대한 돈을 군수물자 조달 및 무기개발을 위해 주요 민간기업 및 대학 연구기관에 배분하고 지원했다. 원자폭탄을 제조하기 위해 1939년 발족한 ‘맨해튼 프로젝트’에서부터 지금의 실리콘밸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캘리포니아가 군수산업으로 급성장한 계기이기도 하다.

이런 군사국가체제는 냉전시기에도 지속됐다. 특히 1950년대의 경우엔 한국전쟁을 계기로 군비지출이 GDP의 15% 이상으로 치솟고 베트남전쟁 등을 거치면서 1960년대 말까지 GDP의 평균 10% 이상을 유지했다. 50개 주정부 예산지출의 총합보다 큰 규모였다. 이 군비지출이 GDP의 5% 이하로 떨어진 것은 1990년대 초반이 되어서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 이후 군비지출은 다시 급증했다. 2019년 통계를 보면 미국은 전 세계 군비지출의 38%를 차지하고, 이는 중국, 러시아, 인도를 포함해 차상위 10개국의 군비를 모두 합친 금액보다 많다. 한국보다는 16배 이상의 국방비를 지출한다. 국내 안보 관련 예산까지 합치면 연간 1조달러를 훌쩍 넘는다. 물론 인력도 몰려 있다. 국방부는 월마트보다 100만명 이상 많은 최소 32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세계 최대 고용기관이다.

문제는 이런 군산복합체가 의회와 강고한 카르텔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미국 도처에 분포해 있는 군사기지 및 군수산업체의 고용인력은 보수 정치인들의 주요 지지기반이다. 국방예산 삭감이나 군인력 구조조정은 언제나 의회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왔다. 48년째 워싱턴 정치에 몸담아 온 바이든 대통령이 이들과 무모하게 대결하는 일을 선택할 리 만무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인종 및 정치적 갈등으로 난국인 데다 중간선거가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 연합하고 협력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향후 미국 정부가 ‘문명 충돌’의 축을 중국과의 대결로 확실히 더 이동시킬 가능성이 농후한 이유다. 이 경우 한국의 협력은 미국에도 절실하다. 한국이 빠진 인도, 일본, 호주, 뉴질랜드로는 중국에 대한 군사적 봉쇄, 북핵 억지전력 강화라는 중장기 새 안보전략의 큰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다. 한국을 ‘린치 핀’이라 부르는 이유다.

그렇다면 한국의 선택지는 뭘까? 남북협력과 한·미 동맹을 제로섬게임 식으로 등치하는 비현실적 시각이나 거북이 등에 딱 붙어 가듯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된다는 식의 굴종적 시각 모두를 버리면, 향후 한국이 미국에 요구할 것들이 오히려 더 많아질 수 있는 국면이다. 지금은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에 대한 섣부른 기대나 우려를 넘어 무엇을 우리에게 해줄 수 있냐고 당당히 물어야 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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