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의 ‘기본소득 비판’을 비판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기본소득제 논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본소득 찬반 논란이 확산되는 속에서 주류 학계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주류 학계의 반응은 반대가 우세하고, 반대가 아니라면 신중론이다. 아직까지는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수준이지만, 곧 학술 공론장의 핵심 주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대선 예비 주자들이 기본소득 또는 그와 유사한 복지정책을 들고나오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조운찬 논설위원

조운찬 논설위원

지난주 장덕진 서울대 교수의 칼럼 ‘기본소득은 의제인가, 복병인가’(경향신문 5월18일자)는 주류 학계의 기본소득 비판의 포문을 여는 서곡으로 읽힌다. 장 교수는 칼럼에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복지’ 정책이나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돌봄사회’ 정책도 모두 이재명 경기지사가 선점한 기본소득 정책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 서 있다”며 기본소득이 정치권에 미치는 파장을 주목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본소득이 내년 대선의 핵심 의제가 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 근거로는 주류 경제학의 반격이 예상되고 국가 차원에서 도입한 사례가 없으며 효과에 대한 합의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장 교수는 기본소득이 틀렸다는 게 아니란 단서를 달았지만, 그것이 대선 주자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있음을 내비쳤다.

주류 경제학이 반격에 나설 것이라는 장 교수의 예측은 다음날 현실로 드러났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본소득의 비용’이라는 칼럼(경향신문 5월19일자)을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 즉 증세 문제를 집중거론했다. 송 교수는 25세 이상 모든 성인에게 월 50만원을 지급하려면 약 250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정부 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비용을 충당하려면 증세는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송 교수는 세금 징수 비용과 함께 증세의 왜곡효과를 기본소득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증세가 노동과 저축의 인센티브를 떨어뜨려 생산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250조원의 세금을 걷으면 수십조원에서 수백조원어치의 생산이 증발한다는 학계의 추정치도 제시했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기본소득 비판>을 펴내며 학계의 비판 대열에 섰다. 이 책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여러 형태의 기본소득제를 분석·비판했는데, 오랫동안 시민사회에 몸담으면서 대중적 복지국가 운동을 펼쳐왔던 진보 학자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이 교수는 책에서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는 기본소득 프로그램들은 ‘아류’ 아니면 ‘가짜’이며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방해할 뿐이라고 맹공을 가했다.

주류 학계가 기본소득 논쟁에 동참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대선 정국이 본격화하면 학계의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문제는 기본소득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다. 주류 학자들은 기존 패러다임, 가치관, 방법론으로 기본소득을 바라보려 한다. 당연히 재원 확보, 효과에 대한 의문, 기본 복지체제 균열 등 기본소득의 문제점이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다. 서구 복지국가 모델을 선호하는 주류 학자들은 북유럽 복지국가만이 보편적이고 역동적인 복지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복지 전문가들이 기본소득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아주 새로운 사회체계이다.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주류 학계는 먼저 기본소득이 왜 우리 사회의 어젠다로 부상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기본소득은 사회 양극화, 신자유주의, 인공지능(AI), 팬데믹, 기후재난 등 다중적 위기의 산물이다. 필요가 발명을 낳듯이 기본소득을 소환한 것은 삶을 뿌리째 흔드는 불안과 위기이다. 기본소득은 경제·복지체계를 보완할 뿐 아니라 시민의 자존감과 책임의식을 높여준다. 선례가 없는 게 오히려 동력이 될 수 있다. 한국은 더 이상 선진국의 뒤만 쫓는 나라가 아니다. 경제, 문화예술 등에선 이미 ‘추월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다. 국민적 합의 없이 섣불리 제도화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국민의 찬성 여론은 반대 여론보다 높고, 정치권에서 관련 법률안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경험한 적이 없고, 효과가 의문시된다는 이유로 백안시할 수는 없다. 주류 학계가 기존 사고로 예단하기보다는 애정 어린 눈으로 연구·분석과 검증에 참여해야 할 이유다. 기본소득이 한국 사회의 옥동자가 될지, 사산아로 끝날지는 국민의 관심, 그리고 학계의 노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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