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잡함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40년 전 6월5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후천성면역결핍증’의 발병 사례를 세계 최초로 보고했다. 성적 낙인의 온상이던 이 질병은 이제 예방이 가능하고 치료제를 먹으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HIV/AIDS는 여전히 낙인의 도구로 소구된다. 좀체 줄지 않는 감염인 숫자는 이 질병에 취약한 이들의 권리를 반대하고 비난하는 이들의 명분이 된다. 하지만 어떤 질병도 일방적인 통제와 처벌로는 해결할 수 없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미국의 예술평론가이자 HIV/AIDS운동가이기도 했던 더글러스 크림프는 <애도와 투쟁>에서 ‘세이프섹스가 문란함/난잡함(promiscuity)의 성과’라고 적는다. 그리고 말한다. “난잡함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당시 에이즈는 게이들의 질병으로 알려졌고 혐오의 물결 속에 레이건 정부는 침묵했다. 하지만 게이 커뮤니티는 도덕적 단죄를 택하기보다 함께 생존할 수 있는 방식을 강구했고, 그 성과는 세이프섹스로 이어져 왔다.

섹스는 신체 접촉의 사적 행위 너머 만남의 방식과 공동체를 발명해온 역사를 끌어안는다. 그렇게 형성된 네트워크에서 성원들은 관계를 추구하는 데서 나아가 위험을 예방하고 안전을 도모할 방법을 공유한다. 물론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1969년 뉴욕의 스톤월 항쟁 이후 촉발된 저항의 역사 속에 트랜스젠더 비백인, 빈곤한 퀴어는 한동안 운동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친밀함을 바탕으로 할지라도 공동체 내부에서는 나이와 질병, 경제력과 노동형태, 장애와 인종 등의 위계가 시민의 기준을 가른다. 하지만 변화를 도모하며 함께 살아낼 양식을 고안하는 노력 또한 불화와 연대를 거듭하는 공동체의 역할일 터.

타인의 안전이 나의 생존에 결부되어 있음을 체득한 이들은 위기 속에 사회를 구축한다. HIV/AIDS에서부터 코로나19에 이르도록 감염병은 상호 연결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행위임을 깨닫게 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홀로 떨어져 생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낸다. 난잡함을 둘러싸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낙인과 단죄가 아니라, 끝없이 작동해온 위계를 추문하는 가운데 타인의 존엄을 보장하고 목숨을 착취하는 구조를 바꾸는 평등의 실천이 아닐까.

지난해 이태원발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하던 당시 게이 섹스 문화를 낙인찍던 이들 중 누군가는 지금도 혐오를 선동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많은 성소수자 업소를 비롯해 혐오의 표적이 되었던 이들은 질병 예방과 치료 정보를 나누는가 하면, 현재 진행 중인 차별금지법 국민 청원에 손을 보태자고 힘을 모으고 있다. 죽음에 근접해 있는 취약하고 난잡한 이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국가의 책임을 촉구하는 것. 런던에서 활동하는 더 케어 컬렉티브가 명명한 ‘난잡한 돌봄’을, 우리는 일찍이 ‘아래로부터의 연대’로 행해 왔다.


Today`s HOT
UCLA 캠퍼스 쓰레기 치우는 인부들 호주 시드니 대학교 이-팔 맞불 시위 갱단 무법천지 아이티, 집 떠나는 주민들 폭우로 주민 대피령 내려진 텍사스주
불타는 해리포터 성 해리슨 튤립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