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보안법과 두 개의 기념일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홍콩에 ‘문자의 옥(文字獄)’이 왔다.”

반중·민주성향의 홍콩 온라인 매체 입장신문(立場新聞)이 지난 27일 이런 내용의 성명을 올리고 이전에 게재한 칼럼을 모두 내렸다. 문자의 옥은 과거 중국 왕조시대에 행해졌던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 방식이다. 서책이나 문서에 적힌 내용이 황제나 체제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며 지식인들을 숙청했던 사건들을 일컫는다. 이 매체는 “홍콩에 문자의 옥이 왔기 때문에 모든 후원자와 필자, 편집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지난달 이전 게재한 칼럼과 블로그 글, 독자 기고 등을 모두 내리고 필자와 게재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이 같은 조치는 홍콩의 대표적 반중 매체 빈과일보가 당국의 탄압으로 문을 닫은 지 사흘 만에 나온 것이다. 보안당국은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지난 17일 빈과일보를 압수수색하고, 편집국장 등 회사 관계자 5명을 체포했다. 동시에 관련 회사 3곳의 자산 1800만홍콩달러(약 26억원)를 동결 조치해 빈과일보의 손과 발을 묶고, 입을 틀어막았다. 빈과일보는 결국 폐간을 결정하고, 지난 24일 마지막 신문을 발행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보안당국이 빈과일보 관계자들에게 적용한 혐의는 홍콩보안법 29조에 규정된 ‘외국 세력과의 결탁’이다. 30여건의 기사를 통해 중국과 홍콩에 대한 외국의 제재를 요구해 왔다는 이유다.

지난해 시행된 홍콩보안법이 ‘눈엣가시’ 같았던 반중 언론을 탄압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보안법 시행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중국은 2019년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반년 넘게 이어지자 혼란을 방관할 수 없다며 지난해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이후 속전속결로 후속 절차를 진행해 6월30일 보안법 시행에 들어갔다. 지난 1년간 홍콩의 범민주진영 인사 100여명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고, 60여명이 기소됐다. 홍콩보안법은 국가 분열과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혐의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홍콩은 30일 보안법 시행 1년을 맞는다. 그리고 7월1일 중국은 두 개의 기념일을 앞두고 있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자 홍콩 반환 24주년 기념일이다. 중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중국 관영언론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홍콩에도 축제 분위기가 가득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은 공산당 100주년 행사 참석을 위해 28일 베이징으로 향했다. 그는 홍콩에서 열리는 24주년 반환 기념일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 홍콩 언론은 행정장관이 이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건 처음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1997년 7월1일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반환받으면서 향후 50년간 ‘일국양제’(한 나라 두 체제)를 통해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반 초이 홍콩중문대 교수는 빈과일보 폐간을 바라보며 “홍콩에서 한 시대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라고 했다. 홍콩을 지탱해 온 일국양제의 시대가 사실상 끝나가고 있다는 의미일 터다. 반환 24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하나의 나라, 중국과 홍콩은 지금 서로 다른 표정으로 두 개의 기념일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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