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거부 설득과 강제 사이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지난 4일 밤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해병대 전쟁 기념비’에 많은 미국 시민들이 모였다. 포토맥강을 사이에 두고 미국 수도 워싱턴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미국 독립기념일 기념행사 중 하나인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불꽃놀이는 기대보다 소박했지만 마스크를 벗고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여름밤 나들이 나선 미국인들의 얼굴에선 홀가분함이 묻어났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날 백악관에 1000명이 넘는 인원을 초청해 바비큐 파티를 벌이며 ‘일상의 회복’을 만끽했다. 그는 연설에서 “오늘 우리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부터의 독립 선언에 어느 때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최악의 타격을 받으며 한없이 체면을 구겼던 미국의 대통령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신감은 백신이다. 지난해 봄 마스크가 모자라 외국에 손을 벌려야 했던 미국은 이제 백신을 다른 나라들에 나눠주는 위치가 됐다.

외부 환경을 논외로 한다면 적어도 미국은 코로나19와의 전쟁이 종반전에 접어든 것이다. 그렇지만 종반전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거나 주저하는 이들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독립기념일까지 18세 이상 성인 70%에게 최소 1차례 이상 백신을 접종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일주일 이상 지난 지금도 이 수치는 67.7%에 머물러 있다.

백신을 맞지 않고 있는 이들은 백신 접종을 완강히 거부하는 이른바 ‘안티 백서’와 접종을 주저하는 부류로 나뉜다. 전자가 신념에 따른 거부자라면, 후자는 백신과 제약사, 정부, 의료기관에 대한 불신, 혹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에 주저하는 이들이다. 백신이 남아도는 상황에서도 백신을 맞지 않은 30% 이상의 시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가 미국이 안고 있는 최대 숙제다.

물가까지 왔지만 물을 먹지 않고 버티는 소에게 물을 먹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스스로 물을 먹도록 설득하고 인센티브를 제시하면서 기다리거나, 아니면 억지로 물을 먹이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철저히 전자의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언론과 지방정부 역시 대대적인 백신 접종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상으로의 회복이 그만큼 늦어지고 코로나19 재확산 위험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무원과 군인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민간기업과 학교가 노동자와 학생들에게 출근 및 등교 전제조건으로 백신 접종을 내걸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집단면역을 앞당기기 위해 공적 권한을 활용하라는 거다. 하지만 마스크 쓰기를 두고도 심각한 논쟁과 갈등을 빚었던 마당에 백신 접종을 강제하면 만만치 않은 저항이 예상된다. 부작용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논쟁과 사회적 비용 지출은 불가피하다. 정부의 정치적 선택과 대중의 여론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고민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은 백신 1차 접종률이 30% 수준이지만,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인식조사 추이를 보면 13~20%가량이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답했다. 한국 역시 백신 접종을 거부하거나 주저하는 이들에 대한 설득을 고민하고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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