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변동 대역전과 경제

정중호 하나금융경영 연구소 소장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찰스 굿하트 교수는 지난 30년간 세계경제의 흐름을 만들어 낸 스위트 스폿(최적점)이 약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계경제가 이제 변곡점에 들어섰다는 얘기다. 그 원동력은 인구변동의 대역전이다. 그동안 중국과 동유럽(노동력)의 세계무역체제 편입, 베이비붐 세대의 노동시장 진입과 부양인구비 감소, 여성의 경제참가율 상승이 세계경제 전반에 엄청나게 긍정적인 노동공급 충격을 주었다. 굿하트의 추산에 따르면, 세계경제의 유효 노동공급은 1991년에서 2018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로 인해 주요 국가들에서 비숙련 및 준숙련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하락 내지 정체했고, 대규모 통화 및 재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낮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장기금리가 꾸준히 하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지껏 잘 작동해 온 글로벌 경제의 장기 추세, 즉 디플레이션 경사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 향후 고령화의 진전으로 노동력 증가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부양인구비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한편, 세계화의 둔화(무엇보다 노동력 유입의 둔화)로 인해 세계경제는 디플레이션 편향에서 인플레이션 편향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게 그의 핵심 주장이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 연구소 소장

정중호 하나금융경영 연구소 소장

굿하트가 바라보는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우선 노동공급 둔화에 따라 실질생산이 위축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저성장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반면 전 세계 부양인구비의 상승으로 실질임금과 노동분배율이 상승하고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강화시키게 된다. 또 과잉저축의 시대가 끝나고 순저축이 순투자보다 크게 감소하여 실질금리는 상승한다 등등. 이에 대응하여 굿하트 교수는 쟁점별로 다각적인 분석과 해법을 제시하지만, 경제주체들, 특히 정책당국에는 가히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는 걱정과 우려를 드러낸다.

가장 골치 아픈 문제는 명목금리의 상승과 재정적자의 심화, 그리고 여전히 가파르게 상승하는 민간부채이다. 부채비율이 너무 높은 수준이어서 금리 상승, 특히 저성장기의 금리 상승은 채무자를 지탱하기 어려운 상태로 내몰 것이다. 통화당국이 이런 우려, 또 정치적 압력 때문에 정책금리를 적절히 조정하지 못하게 되면 유동성 과잉이 팽창적인 상태로 유지되면서 부채비율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 정치적 포퓰리즘의 득세까지 더해진다면 그의 표현대로, “우리의 미래에는 많은 행운이 필요할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침체와 부채의 늪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방법은 더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굿하트의 비관론에 동의하지 않을, 지난 세기 최고의 경제학자 케인스의 견해에 눈을 돌려보자. 본래 케인스는 “장기에는 우리 모두 죽는다”는 말로 장기분석보다는 단기분석에 관심이 많았던 걸로 알려진다. 하지만 그는 1930년에 ‘우리 후손들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짧은 에세이를 통해 100년 뒤를 내다보는 유토피아적 전망을 제시한 바 있다. 특히 케인스는 1929년 10월 월가 주식시장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 초기에 만연했던 경제적 비관론에 맞서 당대의 상황은 “구시대의 류머티즘이 아니라 지나치게 빠른 변화의 성장통”이라고 일갈했다. 구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지만, 아직은 그에 걸맞게 사회 인식이나 제도 변화가 안착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케인스는 결국에는 기술 진보와 자본 축적에 기반하여 “장기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낙관하며, 향후 100년 뒤 선진 국가들의 생활수준이 당시보다 4배 내지 8배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참고로 1930~2020년 사이 주요 선진국의 1인당 GDP는 6배 이상 증가했다.

굿하트의 시계(視界)인 30년은 물론, 또 다른 100년 뒤라도 얼마나 다를까? 심지어 케인스는 “하루 3시간”의 노동이면 경제활동을 유지하는 데 충분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장, 물가, 금리, 부채, 실업 등 서로 얽혀 있는 문제들은 흡사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닮아 있다. 어떤 칼로 끊어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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