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숲에서

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여름 숲에서

여름 숲에 들면

누가 먼저 와 있는 듯싶다

이 산에 터 잡고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

상수리나무 둥치에 영지가 피어났다

산까치 몇 마리가 푸르르 나른다

개암나무 개암 열매가 툭 떨어진다

이 산 구석구석을 경작하는

일구고, 다독여 주는

가슴 넓고, 손이 푸근한

진짜 주인이

이 산에

눌러 살고 있는 것 같다.

이건청(1942~)

밖에서 바라보는 숲은 고요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이따금 숲 위로 날아오르는 새 떼, 간밤에 들려오는 소쩍새와 산짐승 소리. 하지만 숲에 들면 숲은 소란스럽다. 특히 여름 숲은 분주하다. 다람쥐 들락거리는 가지마다 온갖 새소리 요란하고 굴참나무 둥치의 사슴벌레, 투명한 줄을 치고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 일렬로 기어가는 개미들, 풀을 뜯다 놀라 달아나는 고라니까지. 지상에선 머루랑 다래랑 익어가고, 고사리도 쑥쑥 자란다. 숲은 살아 있다.

“여름 숲”에 든 시인은 “누가 먼저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터 잡고 살고 있는” 그는 숲의 지휘자 같다. “영지”를 피어나게 하고, “산까치 몇 마리” 날리고, “개암 열매” 툭 떨어뜨린다. 자연(自然)이란 스스로 그러한 것, 사람의 힘 없이 저절로 된 그대로의 모습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군가의 지휘로 숲은 아름다운 풍경을 “경작”한다. 지휘자의 “가슴은 넓고, 손은 푸근”하다. 이 숲의 지휘자는 절대자라기보다 평생 땅을 일구며 산 우리네 부모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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