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과 올림픽 월계수

이선 |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지금으로부터 85년 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는 시상대에서 고개를 떨군 채 월계수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리고 있었다. 독일 언론의 표현대로 ‘가장 슬픈 올림픽 우승자’였다. 그는 이제 고인이 되었고 광기에 휩싸였던 일제강점기의 뼈아픈 과거도 점점 잊혀 가는 듯하다.

일장기를 가렸던 월계수(정식 명칭은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이다)는 어느덧 90살 가까이 되어 손기정체육공원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안내판에는 수종명이 대왕참나무로 되어 있다. 대왕참나무는 미국이 원산지이다. 월계수도 아니고 참나무, 그것도 미국산이라니?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독일 국민의 씸볼 상수리’라는 제목으로 당시 손기정 우승 기록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만 봐도 그렇다. 일부에서는 ‘히틀러가 잘못 알았다’라거나, ‘월계수를 구할 수 없어 대왕참나무로 대신했다’ 등으로 그 내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독일을 대표하는 나무가 참나무인데 하필 미국산 대왕참나무를 부상으로 수여할 만큼 히틀러가 생각 없는 인물이었을까.

월계수는 승리의 상징이다. 제1회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에서 2등을 한 선수에게 월계관을 부상으로 수여한 사례가 있지만, 참나무 월계관과 참나무 묘목을 우승자에게 수여한 사례는 베를린 올림픽이 처음이었다. 독일에서 참나무 잎이 승리와 영웅의 상징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1813년 빌헬름 3세가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에게 참나무 잎이 그려진 철십자 훈장을 수여하면서부터다. 베를린 올림픽 우승자에게 수여했던 월계관과 월계수는 지중해 연안에서 자라는 월계수가 아니라, 독일에서 자생하는 로부르참나무였다. 당시 베를린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는 금메달 수상자 130명 모두에게 로부르참나무로 만든 월계관과 묘목 화분을 선물하였다. 최근 독일의 유력 주간지 슈피겔은 우승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 묘목을 심어 세계 여러 곳에 자라는 ‘히틀러의 올림픽 참나무’에 관한 르포를 다뤘다. 현재 손기정기념관에 전시된 월계관은 로부르참나무가 맞지만, 월계관 기념수는 미국산 대왕참나무이다. 그런데 당시 손기정 선수가 받은 월계관과 월계수 묘목은 모두 독일의 대표 수종인 로부르참나무가 분명하니 그 까닭이 오리무중이다.

일본은 지난해 개관한 올림픽 박물관에 손기정을 ‘일본의 역대 메달리스트’로 소개했다. 게다가 독도를 일본 영토로 표시한 지도까지 올렸다. 광기의 제국주의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인가.


Today`s HOT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