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내공과 품격은 어디로 갔나

김태일 장안대 총장

이낙연, 이재명 후보의 정치적 공방이 격렬하다. 이번에는 지역주의가 쟁점이다. 몇 합을 겨루었는데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두 캠프는 아직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이렇게 된 경위가 뭐든 보기에 안타깝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버스의 한쪽 바퀴가 도랑에 빠진 기분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마음을 졸이는 이유는 이와 관련한 아픈 기억 때문이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김태일 장안대 총장

‘호남 지역’ 세력과 ‘개혁 리버럴’ 세력 사이의 하릴없는 싸움으로 망조가 들던 열린우리당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의 갈등도 지역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핵심 요인이었다. ‘난닝구와 백바지의 대결’이라고 조롱을 받으면서도 계속했던 두 세력의 싸움은 열린우리당이 쫄딱 망해 간판을 내리고 나서야 끝이 났다. 더 내려갈 곳 없는 상황에 이르러 비로소 그 부질없는 갈등에 대해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1987년 이후 민주화를 함께 이끌어왔던 호남과 리버럴 연합의 해체가 가져온 결과는 참담했다. 열린우리당의 실패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이재명과 이낙연도 열린우리당 시절, 호남과 리버럴의 불화가 무엇을 낳았는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만해야 한다. 두 캠프가 띄운 말풍선을 간추려보니 다툼의 내용은 별거 아닌 것 같다. 이제는 더 싸울 필요도 없어 보인다.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는 있으나 했던 말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지역주의 문제로 분란에 빠져 있는 동안 가장 유력한 경쟁자인 윤석열이 슬그머니 지역 통합 행보를 하고 있다는 점도 이재명, 이낙연이 민망한 싸움을 그쳐야 할 이유다. 윤석열은 광주에 가서 5·18 묘소에 참배를 하더니 대구로 건너가서는 2·28 기념탑에 헌화하였다. 5·18이 처절한 죽음과 부활을 의미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십자가라면 2·28은 체념적 순종을 거부하며 선도적으로 일어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횃불이다. 민주주의의 십자가와 횃불, 두 가지 역사적 기표를 연결하면서 광주와 대구를 엮어내는 정치적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물론 이것으로 윤석열의 정체성과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은, 윤석열은 열심히 지역 통합 행보를 하고 있는데 왜 이재명과 이낙연은 지역주의를 놓고 지지고 볶으며 주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다.

두 후보의 캠프가 이 문제에 대해 격하게 반응하는 까닭은 이것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세대변수가 지역변수에 앞서기도 하는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세대는 지역에 대한 귀속감이나 지역과 정당일체감 등이 기성세대처럼 강하지 않다. 그러니 이낙연, 이재명 캠프는 이 문제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지역 문제의 구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도 이재명, 이낙연 측이 논란을 중단해야 할 이유이다. 지금까지 지역주의라고 하면 영남 패권주의에 의한 호남 배제를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서울공화국이라 부르는 수도권에 의한 비수도권 배제가 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돈, 사람, 정보, 문화, 교육, 권력 등이 수도권으로 몰려들고 있으며 비수도권 다수 지역은 소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소멸 위기는 영남과 호남을 가리지 않는다. 기존 지역대결 구도의 상징이라 할 두 도시, 대구와 광주의 1인당 지역총생산은 매년 꼴찌를 다투고 있다. 두 도시 모두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어느 지역 출신이 대통령이 되느냐, 어느 지역 출신이 정부 요직을 많이 차지하느냐에 관계없이 비수도권 지역의 삶은 점점 더 영양실조 상태에 빠지고 있다. 어느 지역 출신이 정권을 차지하든 서울에서 벼슬하는 그 지역 출신 엘리트들만 재미를 봤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지금까지 서울공화국에서 재미 보던 각 지역의 지배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누리기 위해 지역주의를 동원했다.

이낙연과 이재명은 서울공화국 체제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이 어떻게 상생하며 살아갈 것인가로 의제 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두 후보의 캠프는 비수도권 지역의 절박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대한 대안 경쟁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지역주의를 둘러싼 논전의 발단과 전개 과정을 지켜보면서 줄곧 ‘이재명의 내공과 이낙연의 품격은 어디로 갔나?’라는 생각을 했다. 가장 오랜 기간 대통령 준비를 해 온 후보의 내공과 가장 신사적인 정치인으로 인정받던 후보의 품격이 보이질 않은 것 같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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