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의 상실

부희령 작가

“이곳은 온 천지가 파랑이야. 네가 여기 있었으면.”

부희령 작가

부희령 작가

떠나온 곳의 기온이 38.5도까지 치솟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쪽빛에서 옥빛까지 온갖 파랑이 어우러진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읽은 일레인 스캐리의 책에는 활짝 핀 꽃들을 보면 친구에게 “에디스는 온 천지가 꽃이야…”라고 엽서를 쓰게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을 따라 해 본 것이다. 그 자체가 아름다운 책인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보면 복제하려는 충동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마음속에 떠오른 친구들에게 엽서를 쓰거나 창조적 모사를 하기에는 시간과 능력이 부족했다. 다만 스캐리가 그 위력을 너무 낮게 평가한 듯 보이는 아름다움을 향한 소유욕은 충분했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욕망의 미성숙한 형태일 과시욕도 넘쳤다. 물론 사진을 찍어 그것을 소셜미디어 공간에 게시한다고 해도, 바다와 하늘에서 퍼져나가는 파랑의 영역을 소유할 수 없다.

요즘은 아름다운 풍경과 맞닥뜨릴 때 불안과 두려움도 함께 느낀다. 순서 없이 앞다투어 피어나는 봄꽃들이나 너무 짙은 선홍빛 저녁놀을 볼 때 그랬다. 생애 마지막 봄꽃이나 노을을 보는 느낌이었다. 곧 내가 사라지거나 그들이 사라질 듯했다. 노년기로 접어드는 나이 탓만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이미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집 앞 개울이나 강에서도 헤엄을 칠 수 있었다. 이제 마음 놓고 몸을 담글 수 있는 물은 소독한 수영장과 바다 말고는 거의 남지 않은 것 같다.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상승하는 시점이 예상보다 10년 앞당겨져 2028~2034년 즈음이 될 것이라고 한다. 누가 어디서 얼마나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이는 드물지만, 지구 곳곳에서 들려오는 산불이나 폭우 소식을 들으며 모두 입을 모아 기후위기를 근심한다. 탄소중립을 위한 여러 응급조치의 하나로 성층권에 이산화황을 살포하여 태양열을 반사하는 방법이 거론된다. 과거 대규모 화산 폭발 뒤에 대기로 흩어진 화산재가 태양을 가려 여름이 사라지고 기온이 내려갔다는 기록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언젠가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맑지도 파랗지도 않은 하늘과 빛을 잃은 태양을 보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일까, 어쩌면 물 한 모금과 한 끼 음식이 아쉽고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며 생존이 최우선인 지경에 이를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슬프지 않은가, 훈련된 안목이나 교양 없이도, 값비싼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고개를 들면 언제나 누구나 누릴 수 있던 아름다움이 홀연 사라진다는 것이. 그런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를 같은 인간으로 대할 수 있을까.

스캐리는 묻는다. “가까운 미래에 인간들은 아름다운 하늘이 있거나 아니면 없게 사물들을 배치할 수 있다. 너는 아름다운 하늘이 있기를 바라는가?” 그리고 덧붙인다. “사람이 아름다움의 상실을 자신은 겪을 수 있어도, 자신이 일부로 있는 더 넓은 세계, 자신이 살아온 시대와 그 어떤 미래 세기가 그토록 심각한 상실을 겪는 걸 바랄” 리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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