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과 효율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학과 교수들은 첫 학기부터 신입생들에게 효율과 형평의 개념을 가르친다. 효율은 국민 전체가 먹을 수 있는 빵의 크기를 최대화하는 문제이고 형평은 이 빵을 어떤 비율로 나누어 각 국민에게 배분해야 옳은가의 문제라고. 그 후론 대개 과학적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형평의 문제에는 입을 다문다. 마치 형평은 중요한 사회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반면 소득재분배를 둘러싼 언론과 정가의 논란에는 효율이라는 개념이 통째로 사라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또한 큰 문제다. 효율은 형평의 모습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많은 중도·진보 성향의 국민들이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두 가지 분배정의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하나는 “최소 수혜자의 혜택을 최대화”해야 형평이 실현된다는 존 롤스의 <정의론>을 따르는 경우다. 빵의 크기가 고정되어 있다면 모든 국민이 빵을 n분의 1 해서 먹어야 형평이 실현된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n분의 1보다 큰 빵을 먹으면 누군가 n분의 1보다 작은 빵을 먹을 수밖에 없고 최소 수혜자의 혜택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국민총효용의 최대화”를 추구하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따라도 마찬가지다. 빵 1g을 더 먹을 때 발생하는 가치(효용)가 빵의 소비량이 증가할수록 감소하고, A의 빵이 B의 빵보다 크다고 하자. 그럼 빵 1g의 가치는 A보다 B에게서 더 클 것이다. 따라서 A에게서 빵 1g을 빼앗아 B에게 주면 국민총효용이 늘어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크기의 빵을 먹어야 국민총효용을 증가시키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빵을 n분의 1 해도 빵 전체의 크기가 변하지 않을까? 노력을 더해도, 교육을 더 받아도, 투자를 더 많이 해도 내가 먹는 빵의 크기가 변하지 않는다면 노력, 교육, 투자의 양이 감소할 수밖에 없고 빵의 생산량도 감소한다. 이게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라고 귀가 따갑게 듣지 않았나? 이렇게 극단적 경우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의 세율이 너무 크거나 저소득층의 보조금이 너무 두꺼우면 시장소득에서 세금을 빼고 보조금을 더한 가처분소득이 노력이나 축적에 반응하는 정도가 낮아진다. 그럼 노력과 축적의 인센티브가 저하되어 최소 수혜자의 혜택과 국민총효용이 감소할 수 있다. 따라서 형평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효율의 현실과 타협하여 적당한 정도의 소득불평등을 유지하여야 한다.

새로운 복지를 꿈꾸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형평이라는 가치를 위해 필요하면 효율을 희생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꿈에는 가격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세의 효율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미래를 설계하는 전문가는 보석상에 들어가 가격을 묻지 않고 결혼반지를 구매하는 신혼부부와 같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다. 기본소득은 최소 수혜자에게 혜택을 집중하는 복지제도에 비해 많은 양의 세금을 필요로 하고, 이는 현행 세제를 유지할 경우 세율을 크게 증가시켜 필요 이상으로 빵의 크기를 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달 이재명 경기지사는 이런 부류의 비판을 의식한 듯 새로운 기본소득 재원 확보 방안을 제시했다.

그 하나는 국토보유세를 도입하는 것이다. 세금을 맞은 토지는 크기를 줄이거나 회계장부 뒤에 숨거나 해외로 도피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세의 효율 비용이 거의 없다. 토지세가 임대료를 증가시켜 세금 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흔한 주장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경쟁적인 시장에서 토지처럼 공급이 고정된 재화에 부과한 세금은 타인에게 전가되지 않는다는 것은 기초 경제이론이다. 또한 재산에 대한 세금의 확대는 인구가 급속히 노령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미래의 복지 수준이 급락하는 것을 막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축소하는 노동에 대한 세금으로 급속히 증가하는 노인들의 복지를 뒷받침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둘은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탄소세는 눈에 보이는 빵의 생산을 감소시키지만 적정한 온도의 맑은 공기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빵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합리적 탄소세는 빵의 크기를 줄이지 않는다. 또한 앞으로 우리 기업이 유럽과 미국에 납부해야 할 탄소국경세를 덜어주는 효과도 갖는다. 국내에서 납부한 탄소세만큼 탄소국경세를 깎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효율 비용이 낮은 세금을 통해 형평으로 한 발짝 다가가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할 일이다.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의미 있는 크기의 세원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와 이런 효율적 재원이 최소 수혜자에게 혜택을 두껍게 하는 데 집중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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