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매체를 갖고 싶다

조광희 변호사
[조광희의 아이러니] 믿고 보는 매체를 갖고 싶다

재미 삼아 스웨덴 뉴스를 살펴볼 때가 있었다. 주요 뉴스가 ‘공주의 딸 출산’이나 ‘구걸은 수동적 펀드레이징이므로 경찰허가가 필요 없다는 판결’ 따위였다. 참 지루하게 산다는 생각과 함께 별게 다 뉴스가 되는 평온한 사회가 부러웠다. 이 사회의 뉴스는 매우 소란스럽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사회가 역동적이기 때문인데 이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다른 이유는 들불처럼 번지는 ‘아무말 대잔치’ 때문이다. 어떤 이슈의 진실이 시간이 지나면서 밝혀지는 게 아니라, 갈수록 논란이 증폭되다가 다음 이슈에 밀려 사라진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사생활과 명예를 난도질당한다. 언론은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내는 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온 사회가 정치적 지향과 호오에 따라 편이 갈려, 하나의 진실로 수렴되는 법이 거의 없다. 각자 맘에 드는 허구적 서사를 애지중지하며 살아간다.

조광희 변호사

조광희 변호사

나는 ‘무엇을 믿을지 말지에 관한 판단력과 그 이유를 다른 이와 평화롭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게 교육의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는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어떤 사안에서 무엇이 진실인지를 판단하는 게 너무 어렵다. 여러 매체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더 헷갈릴 뿐이다. 차라리 미디어를 모두 꺼버리는 게 나을까. 초고속·초연결 사회의 부작용이 한국에서 절정에 이른 것일까.

나는 이 점에서 한국 언론에 불만이 많다. 사실을 벽돌처럼 축조하는 게 아니라, 방향을 정하고 쓰인 기사가 너무 많다.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진영에 따라 잣대가 이중적이다. 어느 매체의 논조가 흡족하든 불편하든, 기사를 읽으면서 의식적으로 판단을 유보하는 버릇을 가지게 된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진위가 정말 궁금하면 이런저런 자료를 뒤져보지만, 사안마다 그런 노력을 기울일 수는 없다. 결국 늘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살게 된다. 이게 정상적인 사회일까?

나도 믿고 보는 매체를 가지고 싶다. 지금 내게 그런 매체는 없다.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고, 뉴욕타임스나 가디언 같은 서구 매체를 예로 드는 사람도 제법 있을 것이다. 논픽션 작가 존 맥피는 <더 패치>라는 책에서 잡지 ‘뉴요커’가 팩트를 체크하는 이야기를 인상 깊게 기록한 적이 있다. 작가가 보낸 기고문에 포함된 온갖 팩트를 체크하는 부서가 있는데, 그 과정이 시쳇말로 ‘역대급’이다. 작가가 무심히 적은 소소한 사실조차 경이적인 노력을 들여 실제와 부합하는지 확인한다.

우리 언론은 어떠한가? 피해자가 없는 팩트에 대해서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정당하게 반론할 기회를 박탈당해 한이 맺힌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손해배상과 정정보도 등을 구하는 제도가 있지만, 깔끔하게 피해가 구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사회적 생명이 끊어지고, 실제로 생명을 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나는 언론중재법 개정의 큰 흐름에 찬성한다. 물에 잔을 가득 채우려면 물을 넘치게 따르는 수밖에 없다. 징벌적 배상은 힘센 언론에 대항할 역량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의 피해를 방지하고, 이미 발생한 피해를 구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이 개정은 이 사회가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다. 언론의 자유는 소중하지만, 충분한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일 뿐이다.

그런데 여당은 이 중요한 개혁을 왜 이렇게 미숙하게 추진하는가.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불명확한 개념이나 어색한 조항을 추가하여 빈축을 산다. 왜 야당과 숙의하고 이해당사자를 설득하는 과정을 피곤하게만 생각하는가. 어쩌면 이 개정안은 여당 정치인들이 평소 당사자로서 답답하게 느낀 것을 해결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윤미향 의원이 발의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에 관련 단체까지 보호하는 조항이 포함된 것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혐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법안의 방향이 옳기 때문에 그 틀을 지지하며, 개별 조항에 대한 정당한 지적을 수용하면서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개정은 밑도 끝도 없는 ‘아무말 대잔치’에서 벗어나고 존경할 만한 저널리스트가 대거 등장하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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