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내려온다

조광희 변호사
[조광희의 아이러니] 인공지능이 내려온다

인공지능(AI)을 소재로 소설을 쓴 것이 계기가 되어 계속 AI를 공부하고 있다. 어떤 관심사가 생기면 전에 놓친 것들이 눈에 보이는 현상을 누구나 경험한다. 눈을 크게 뜨고 보니, AI에 관한 기사의 수도 상당하다. 문학이나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초창기에는 AI에 대한 뚜렷한 인식 없이 ‘인간 유사의 로봇’이라는 형태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인간에 필적하거나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지능을 가진 AI가 이야기를 주도한다.

조광희 변호사

조광희 변호사

AI와 관련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는 AI가 초래할지도 모를 파국이다. 그것을 소재로 한 가장 으스스한 상상력은 영화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요사이 입조심이 필요해 보이는 일론 머스크는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북한 핵무기가 아니라 AI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것이 영화적 상상력으로만 치부할 일인지 견해가 엇갈리지만, 급격히 발전하는 AI 기술을 보면 코웃음을 칠 일은 아니다. 막연한 낙관론은 바람직하지 않다. AI가 계속 발전하는 것이 자명하다면,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 인간의 통제력과 지력을 위협할 지경에 이른다고 가정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경계하는 것이 마음을 놓는 것보다 늘 현명하다. 파스칼이 신의 존재에 관해 펼친 논법을 빌린다면, AI가 위험하다고 가정했다가 별일 없으면 괜찮지만, 별일 없으리라 방심했다가 예측이 어긋나면 재앙이 된다. 전 세계인이 1년이 넘도록 마스크를 쓴 채 살아야 하는 상황을 우려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개인적으로는 ‘AI가 인간과 유사한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의식’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해 인식하는 작용’이라고 사전적으로 풀이된다. 철학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라고 일컬을 수 있는 상태다. 사람의 ‘의식’과 관련된 신경해부학적 영역은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는데, 뇌의 전두엽 피질 영역의 네트워크에서 발생한다고 믿어지고 있다. ‘의식적 경험’이 무엇인가를 밝히려는 최신의 과학적 노력도 아직 수수께끼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AI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를 논의하는 과학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뉜다. ‘의식’적 경험을 발생시키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계산과정을 정확히 구현하면, AI도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예상하는 그룹이 있고, 현재의 컴퓨터 회로는 뇌의 정보처리 과정에서 나타나는 프로세스를 구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과 같은 ‘의식’을 구현할 수 없다고 예상하는 그룹이 있다. 어떤 이는 뉴런으로 만든 바이오칩이나 줄기세포 배양으로 만든 인공뇌 등에서 의식 구현의 가능성을 예측하기도 한다. 현재로서는 가까운 미래에 AI가 ‘의식’을 가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억겁의 세월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지구는 어떤 생명도 없던 곳에서 아무런 의도도 없이 마침내 ‘의식’을 만들어 냈다.

AI가 ‘의식’을 가진다면 다음으로 무엇이 문제가 될까. 엄청난 지력을 지닌 AI가 의식마저 가지게 된다면, 인간은 AI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의식을 가진 AI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인간중심주의를 뿌리에서부터 다시 성찰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인간중심주의의 가장 성공적 이념인 휴머니즘은 인간 내부의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철폐하고 보편적 인간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휴머니즘은 인간이 동물을 비롯한 생명 그리고 지구와 공생하게 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기후변화를 비롯한 지구적 위기를 막지 못하고 있다. 어떤 철학자들은 인간이 만들었고, 인간에 가장 흡사하면서도 가장 낯선 존재인 AI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 연구하며, 휴머니즘을 넘어서는 포스트 휴머니즘(Post-Humanism)을 제안하고 있다.

아직 그 정체와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AI를 기술적·산업적으로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철학, 윤리, 법률의 측면에서 깊고 섬세하게 연구하는 것 또한 빠뜨려서는 안 될 과제다. 소문만 무성하던 인공지능이 범 내려오듯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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