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코로나19가 가져다준 몇 가지 흥미로운 변화들이 있다. 집에서 더 많이 요리하고 배달이 많아진 건 다 아는 사실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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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이른바 백신 쿠킹이라는 게 있다. 또는 상징적으로 ‘타이레놀 쿠킹’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해열제와 백신과 요리의 기묘한 조합인 셈이다. 백신을 맞고 며칠 쉬는 동안 요리를 해먹을 궁리, 만든 요리에 대한 감상과 자랑(?) 또는 실패기가 SNS에 많이 올라온다. 인스턴트나 밀키트도 있고, 매우 심오한 수준의 요리에 도전하는 이들도 있다. 마이야르 반응을 따지고 수비드와 브라인 같은 전문용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분도 많을 것이다. 그만큼 요새 전문가적 수준과 취향의 자발적 가정 요리사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주로 한국에서 훨씬 강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특히 교육수준이 높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한국의 40대, 50대가 이를 주도한다. 컴퓨터, 카메라, 자동차 같은 보편적으로 남자들이 많이 즐기는 취미생활에 요리가 추가된 셈이다. 앞에서 ‘수비드’라는 요리 방법을 거론했는데, 아마존에서 이 요리기술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저온조리기계를 팔고 있는데, 상당량이 한국에서 주문한다고 한다.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도 해외에서 구매해서 파는 이 수비드기계가 아주 많이 올라와 있다. 한때 수비드는 선진적인 기술을 익힌 ‘청담동 요리사’들의 전유물이었다. 질긴 고기를 아주 부드럽고 별난 질감의 고기로 바꿀 수 있는 이 기술은 그 동네 요리사들 사이에서 소리 소문 없이 퍼져 나간 적이 있다. 어떤 부위를 몇 도의 온도에 몇 분 익혀야 하는지 데이터가 없어서 아는 요리사들끼리 은밀히 공유하곤 했다.

요리사들 사이에서 농담 같은 푸념이 있는데, 이제는 다른 요리사가 아니라 손님이 될 수도 있는 일반인들과 경쟁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더 고급한 정보와 데이터를 빨리 확산시킨다. 유튜브는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핵심적인 루트가 되었다. 채널 운영자가 고급 정보를 수집하여 공개하면 블로거와 달리 돈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더 자주, 더 많이 공개할수록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 수비드니 뭐니 얘기했지만, 실은 주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제는 사용자의 유튜브로 곧바로 공개되곤 한다. 그것이 설사 고급정보가 아니라고 해도, 일반인들은 매우 유용하게 받아들인다.

주방이라는 미지의 세계의 문이 열린 격이다. 예를 들어 짬뽕과 짜장을 만드는 법을 목격할 수 있다. 제대로 된 기술인지는 다음 문제다. 당장 어느 중국집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은 틀림없으니까. 과거에도 이런 기술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요리사가 텔레비전에 초대되어 정돈된 형태로 요리 기술의 일부를 보여주는 데 지나지 않았다. 유튜브는 원래 뭘 했다 하면 전문가 뺨치는 애호가가 많은 한국의 남자들이 훌륭한 고급 요리를 하게 만들었다. 자, 이제 집에서 중국집 불맛 나는 짬뽕과 수비드한 스테이크를 먹게 될 것 같다. 백신 쿡은 그것을 가속화시켜 보여주는 작은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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