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전시기획자·d/p디렉터
패멀라 B 그린, 자연스럽게: 알리스 기 블라셰의 전해지지 않은 이야기, 2018, 103분 courtesy of Collection Societe Francaise de Photographie

패멀라 B 그린, 자연스럽게: 알리스 기 블라셰의 전해지지 않은 이야기, 2018, 103분 courtesy of Collection Societe Francaise de Photographie

기록의 목적은 남겨지는 데 있다. 기억하는 이들이 사라져도 세상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그러나 기록을 살필 때는 남겨놓은 자의 목적과 의도를 헤아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기록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상반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록을 살필 때는 기록의 행간, 기록되지 않은 것도 헤아려야 한다. 때때로 정말 중요한 것은 기록되지 않은 세계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패멀라 B 그린은 1873년 태어나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약한 여성 영화감독 알리스 기를 우연히 알게 된 후, 그에 대한 기록을 찾았다. 그러나 영화가 등장한 초창기에 1000여편의 작품을 연출, 제작하면서 영화산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 인물에 대한 기록은 영화사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가 10년간 영화제작 총책임자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프랑스 영화제작사 ‘고몽’의 역사서 안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영화사에 정통한 인물들에게도 알리스 기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그의 이름은 왜 지워졌을까. 그린은 흐릿하게 남아 있는 알리스 기의 흔적을 찾아 나선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를 본 알리스 기는 이 매체야말로 이야기를 전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1896년 최초의 극영화 <양배추 요정>을 직접 쓰고 감독하여, 영화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이후 다양한 특수효과를 선구적으로 사용하여 실험적인 영화를 제작하는 한편, 인종, 동성연애, 계급, 이민 문제 등 사회적 편견이 작동하는 주제에 주목한 작품을 발표하는 등, 영화사 안에서 지울 수 없는 중요한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의 혁신적인 업적은 지워졌고, 역사는 다르게 쓰였다. 지금은 다시 그 이유를 질문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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