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와 스펙터클 민주주의

한윤정 전환연구자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는 뉴스가 나왔다. 탈레반의 오랜 동맹인 이슬람국가(IS)가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숙소에다 폭탄을 터뜨려 수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특히 미군의 사망은 중요하다. 갑작스러운 철수 결정으로 미군의 희생을 불러왔다며 공화당의 탄핵 위협을 받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하다가 울컥할 만큼 충격을 받았다. 퇴각하는 미국의 뒤통수를 향한 적의 공격 앞에서 처절한 복수를 다짐함으로써 전쟁의 속편이 예고됐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공항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아비규환, 아기라도 구하려 공중에다 던지고 깔려 죽는 장면…. 마음이 힘들어 차마 뉴스를 보기 어려운 순간이 많다. 세계는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을까. 그 와중에 한국이 ‘미라클’이란 작전명으로 한국대사관 협력자들을 탈출시키고, 그동안 난민에 대해 혹독했던 우리 정부를 대표해 법무부 장관이 공항으로 마중 나간 장면에 안도하며 박수를 쳐야 할까. 엄청난 현실은 배경으로 물린 채 휴먼스토리에 집중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기 드보르는 현대를 ‘스펙터클의 사회’(1967)라고 했다.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정치, 경제, 문화의 통합체로서 미디어를 통해 구성되는 스펙터클(구경거리)은 사람들의 감각을 마비시켜 주체위치를 망각하고 현실을 왜곡된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구경거리에 압도당해 현실인식과 비판력이 약해진 결과는 치명적 위험이다. 2001년 뉴욕 9·11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시작된 20년의 아프간전쟁은 미국이 연출한 엄청난 스펙터클이었으나 현실은 기대와 달리 진행됐다. 미국은 왜 베트남에서의 실패를 반복했을까.

최근 아미타브 고시의 <대혼란의 시대>(김홍옥 옮김, 에코리브르)를 읽었는데, 인도 출신 소설가이자 비교문학자인 고시는 오늘날의 상황을 보는 혜안을 준다. 그가 정의하는 ‘대혼란’(Great Derangement)이란 기본적으로 기후위기이지만, 아프간 참상처럼 세계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위기로 대체해도 무방할 것 같다. 고시에 따르면 현대성은 안정된 현실을 기본값으로 상정해왔다. 기후는 유순하고 갈등은 통제 가능하며 대부분의 문제는 첨단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현대 산업문명을 일으키고 글로벌사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의 허점이 테러라는 이름으로, 기후위기라는 모습으로 출몰한다.

배경에는 무지가 자리 잡고 있다. 예컨대 자연에 대한 무지다. 전통사회에서 바닷가에 집을 짓는 건 바보나 하는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러나 무역과 이주로 발달한 현대 도시들은 바다에 접해 있으며 해수면 상승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캘리포니아를 보더라도 태평양 연안에 있는 부자들의 대저택은 최근 지진과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물론 재난을 피해 내륙으로 이주하고 있다). 고시에 따르면 근대 이전까지 과학자들 사이에는 자연의 격변설과 점진설이 대립했다. 그러나 현대문명이 발전하면서 자연은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움직인다는 점진설이 우세해졌다.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는 기후위기는 인간의 오만을 비웃듯 활성상태로 변한, 격변하는 자연이다.

무지와 무식은 다르다. 무식이 현재 지식패러다임에서 앎의 부족을 뜻한다면, 무지는 패러다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지한 걸 모르는 게 가장 큰 무지이다. 미국은 왜 탈레반에 패배했는가. 기술이 자연을 이긴다는 오만이 가져온 무지 때문이다. 미국은 첨단 레이더와 폭격기를 동원해 탈레반을 공격했지만, 평균 2000m 고도의 산간지역에 숨은 그들을 당할 재간이 없었다. 외지인과 달리 현지인은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에서 오래 버틸 수 있다. 비단 지리적 무지만은 아니다. 슬라보이 지제크는 최근 한겨레 칼럼에서 ‘이데올로기가 갖는 물질성’을 미국이 경시했다고 지적했다. 순교하기로 작정한 이들 앞에서는 돈도, 기술도, 전문성도 소용없다.

우리는 아프간 사태에 힘을 미칠 수도, 아마 기후위기를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집단적 무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다. 정치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잡아놓는 가장 흥미로운 스펙터클이기 때문이다. 요즘 정권 유지냐 교체냐, 절체절명의 시기에 ‘국민의 눈을 가려온 허위·조작 정보’의 유통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언론중재법 개정이 여당에 의해 시도되고 있다. 대립, 고성, 밤샘, 날치기…. 무지의 장막을 거둬내려는 순간에도 지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스펙터클 민주주의로 불리는 대의민주주의에서 더 이상 그런 걸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알지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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