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물신주의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고객님의 상품이 배송되었습니다. 인수자(위탁): 현관문 앞.” 이른 아침 문자 소리에 깨어 현관문을 열어보니 어제저녁 주문한 상품이 벌써 바닥에 놓여 있다. 로켓 배송이라더니 클릭 몇 번에 원하는 상품이 바로 문 앞에 배송되는 세상에 새삼 놀란다. 쿠팡 이사회 김범석 의장이 2019년 미국 CNBC 기자와 인터뷰한 장면이 떠오른다. 김 의장이 달뜬 목소리로 꿈을 펼친다. “만약 잠자리에 들기 전 주문을 하고, 일어나 보니 상품이 문 앞에 있다면요.” 기자가 호들갑스럽게 맞장구를 친다. “크리스마스 선물처럼요?” 바로 찬탄이 튀어나온다. “네, 그건 마법 같은 일이죠.”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지난해 10월 칠곡의 한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던 20대가 택배 출고 지원업무를 마치고 새벽 퇴근했다가 집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동안 열대야에 냉방 설비도 없는 물류센터에서 5㎏ 상자를 하루 최대 100번 나르고 밤샘 작업을 했다. 숨지기 전 일주일 동안은 무려 62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렸다. 올해 3월 송파에 있는 한 물류 캠프에서 새벽 배송을 담당하던 40대가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초부터 홀로 서울에 와 고시원에 거주하면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연말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고 좋아했지만, 심야 노동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약속했던 첫 휴가, 피로로 잠시 미루었는데 끝내 이루지 못했다.

한쪽에서는 마법 같은 소비의 세계가 펼쳐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죽음 같은 노동의 세계가 참혹하다. 마르크스가 19세기 자본주의에서 꿰뚫어 본 ‘상품 물신주의’가 플랫폼 경제 운운하는 현재에도 다름없다. 마법과 같은 초자연적 가치를 내재적으로 품고 있는 듯한 상품이 사실은 참혹한 노동과정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 4차 혁명이니 온라인 플랫폼이니 현란한 수사에 잠시 홀려 깜빡했나 보다.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기존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하면 그 노동을 통해서는 가치혁신이 어렵다. 이를 포기하고 장기간 강도 높은 노동을 시켜 이윤을 적출한다. 반자본주의적 노예노동은 보통 관객이 볼 수 없는 무대 후면에서 이루어진다. 소비자 관객은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스스로 이윤을 창출한다고 착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플랫폼 경제의 새로움을 주창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인공지능을 통해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파악하고 있기에 주문 없는 상태에서도 항상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해서 독립계약이나 자유직을 대거 창출했기에 가능하다. 이제 노동자는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 플랫폼에 접속하여 원하는 시간과 방식을 골라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물류창고에서 행하는 노동은 전통적인 노동 착취이고, 이 플랫폼 노동이야말로 진정 새로운 형식의 가치 창출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임금 노동은 소외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사용자에게 노동과정을 통제당하고, 동료와 소통하지 못한 채 홀로 일하다가 사물로 전락하고, 자신이 생산한 상품에 지배당한다. 새로운 플랫폼 노동은 과연 이를 벗어난 것일까?

한국의 현행법은 플랫폼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소비자 요구에 따라 건당 일하기에 사용자의 감독과 통제에서 벗어난다는 게 명분이다. 실제로 플랫폼 노동자는 대개 홀로 이동하며 일하기에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사용자는 인공지능을 통해 노동자를 감독 통제한다. 고객의 별점 평가가 좋은 예다. 속이 상해도 불만을 드러냈다가는 빅데이터 패턴에 오점이 생겨 이후 일을 잡기조차 어렵다. 자연히 자신의 감정을 표준화된 상품으로 만드는 노동을 한다. 배송 노동자 같은 경우는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할 기회조차 빼앗겨 감정노동이라 부르기도 무색하다. ‘플랫폼 물신주의!’ 소비자가 마법 같은 세상을 즐기는 사이 노동자는 탈감정화된 극한의 사물화된 노동으로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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