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드레 나물밥과 편의점 도시락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곤드레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 끼다. 그냥 양념장만 넣고 비벼 먹어도 산뜻한 향과 감칠맛이 입안 가득해진다. 심지어 냉동 제품으로 나온 간편식에서조차 격조가 느껴진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곤드레는 원래 강원도 깊은 산속에서 자라는 야생 풀이었다. 깊은 산속의 화전민들에게 곡식은 늘 부족했고, 부족한 포만감을 채워준 것이 곤드레였다. 그렇지만 곤드레는 다른 채소와 달리 두툼하고 억세다. 잎의 끝에는 톱니 모양으로 뾰족한 가시까지 나있다. 그래서 다른 나물보다 훨씬 오랫동안 데쳐야 한다. 그 옛날 화전민이 아마 온산의 풀을 데쳐 먹어보다 이 가시 돋친 풀이 꽤 요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곤드레는 다른 풀들과 달리 많이 먹어도 몸이 붓는 부작용이 없다. 오히려 곤드레는 당뇨나 변비 개선은 물론이고 면역력까지 강화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래서 이 나물은 강원도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에도 곤드레와 비슷한 채소가 있다. 아티초크다. 아티초크는 샐러드나 피자처럼 가벼운 요리는 물론 고기 요리와도 함께 즐기는 고급 식재료다. 그런데 이탈리아 시장에서 처음 본 아티초크의 생김새는 정말 특이했다. 파충류의 긴 발톱처럼 크고 억센 가시가 잎마다 뒤덮여 있어 마치 새끼 악어가 누워있는 듯했다. 같은 국화과지만 곤드레는 아티초크에 견주면 순한 양이었다.

이 풀을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민족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유대인들이었다. 차별받던 그들은 살기 위해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했다. 그들의 절박한 현실이 짐승처럼 생긴 가시투성이의 풀까지 뽑아 먹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아티초크는 시칠리아는 물론 이탈리아 본토의 미식가들에게도 맛으로 인정받게 됐다.

우리 시대의 곤드레나 아티초크는 뭘까? 일단 편의점 도시락을 꼽을 수 있다. 편의점 도시락은 ‘편도족’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젊은이들 사이의 트렌드가 돼왔다. 거기에 코로나19로 판매량이 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은 곤드레나물의 유래만큼이나 짠하다. 편의점에 가보면, 청소년은 물론이고 반백의 노인도 도시락을 먹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편의점 도시락과 삼각김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의 복지 예산을 지출하는 우리나라의 필수불가결한 사회안전망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나트륨과 열량 과다다. 예전에 편의점 도시락 취재를 위해 취식 전과 후의 내 혈압을 비교한 적이 있었다. 제육볶음 도시락을 먹고 재보니, 120㎜Hg이던 최고 혈압이 곧바로 150㎜Hg까지 올랐다. 또 두 끼를 잇달아 먹어보면 달고 짠맛에다 조미료 맛까지 강하게 느껴진다.

가벼운 주머니로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편의점 도시락에 집밥 같은 맛을 기대하는 것은 내 욕심일 것이다. 그렇다면 편의점 도시락 메뉴에 곤드레 나물밥처럼 인위적 손길이 별로 필요 없지만 자연의 맛을 담은 메뉴를 선보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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