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과 ‘브로콜리’

인아영 문학평론가

“말자주것다와주삼.” 말자가 죽었으니, 와달라는 것이다. 이유리의 단편소설 ‘브로콜리 펀치’(문학과사회 2021년 봄호)에서 요양보호사 ‘나’는 친하게 지내는 안필순 할머니로부터 간밤에 이런 문자를 받는다. 할머니가 키우던 반려조 앵무새 말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갑작스러운 부고. ‘나’와 할머니 애인 박광식 할아버지는 다세대주택 마당에 부랴부랴 모인다. 말자가 좋아했던 분홍색으로 의상 코드를 맞추고, 나무로 된 작은 와인상자에 말자를 누이고 횃대, 말린 과일, 장난감 공 같은 말자의 물건을 담아 흙으로 덮어준다. 조촐한 앵무새 장례식이 열린 셈이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하지만 반려동물의 죽음을 추모하는 의례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말자의 장례식은 여러 사람들이 한데 모여 근황과 마음을 나누는 계기가 된다. 마침 ‘나’의 복서 남자친구 원준의 오른팔이 갑자기 브로콜리로 변해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안필순 할머니는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듯 덤덤하다. “그게 다 마음에 짐이 커서 그런다. 누구를 미워하고 괴로워하고 으응, 그런 나쁜 것들을 맘속에 오래 넣고 있다 보면 (…)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이지.” 그렇게 넷이 함께 모여 서로의 아픔에 스르륵 닿고 각자의 응어리를 바닥부터 털어낸다. 혈연과 종을 넘어선 다양한 가구 형태가 가시화되는 한편 개개인이 치열한 돌봄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 시대의 신풍속을, 이 귀엽고 따뜻한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각종 의례는 재생산 주기에 놓인 성인 남녀 한 쌍의 법적 결합과 그에 따른 임신, 출산, 양육 등 ‘정상’ 가족의 사이클을 중심으로 배열된다. 이 순환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 희로애락은 사소하고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마련이다. 애정, 기쁨, 외로움, 슬픔과 같은 인간의 크고 작은 감정들은 의례라는 문화적 형식을 거치며 비로소 그 존재 의미를 정당화받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의 인간관계에서 그럴 듯한 일상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SNS 문화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는 동안, 타인에게 전시하거나 목격될 만하지 않은 삶의 면면들은 점점 비가시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이를테면 공식적인 통계나 언어로 잡히지 않은 아프고 취약한 몸 같은 것. 화려하거나 세련되지 않아 가시성을 부여받지 못한 작고 뭉툭한 마음 같은 것.

최근 이삼십대 여성 청년들이 비건 만찬을 차리며 나눈 대화를 기록하는 ‘엄살원 프로젝트’에서 ‘순찰 돈다’라는 표현을 본 적이 있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고립되기 쉬운 요즘 주기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일을 빗댄 것이다. 재치 있는 표현이지만 웃어넘길 말은 아니다. 고용 불안정, 여성혐오 범죄 등으로 물리적·정신적 건강을 위협받고 있는 이들에게 서로의 근황과 마음을 나누는 일은 사회가 보호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목숨을 구하는 마지막 보루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 죽었으면 “말자주것다와주삼”이라고 문자 보내기, 눈 딱 감고 손 내밀기, 아무렇지 않게 손 잡아주기, 서로의 몸이 브로콜리로 변하지 않았는지 걱정해주기, 가끔은 엄살 부리기, 대수롭지 않게 엄살 받아주기, 순찰 돌기, 자주는 못해도 틈틈이는 그렇게 하기. 그 효과는 아무렴,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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