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책무

이융희 문화연구자

비평을 공부해 밥 벌어먹고 살다보니 콘텐츠가 유행하면 그 콘텐츠에 대한 비평을 작성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비평을 했는지 종종 찾아보게 된다. 비평문의 마지막 문장을 적고 메일함에 전송하기 전 꼭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혹시 이 비평을 게으르게 작성한 것이 아닌지 말이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융희 문화연구자

게으르게 맺은 비평이란 아래와 같다. ‘이 콘텐츠는 지금 현대 사회를 반영했다’식의 마무리 말이다. 이건 한국 사람들의 주식은 밥이란 소리처럼 모두 아는 얘길 거창한 듯 마무리한 것에 불과하다. 좋은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비평은 거기서 어떤 사회를, 어떻게, 왜 반영하는지 더 나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또 다른 게으른 방식으론 이 콘텐츠가 MZ세대나 이대남, 젊은이들 등을 표상하고 있다는 식으로 분석하는 케이스가 있다. 비평가 자신을 안전한 공간에 위치시키고 콘텐츠를 좋아하는 집단을 특정 세대나 집단으로 이름 붙인 뒤 그들이 왜 이 작품을 좋아하는지 개별의 호불호를 제거한다. 콘텐츠 속에서 특정 집단의 욕망이 구현되었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분석은 노골적인 엘리티즘이고 콘텐츠 소비자를 모욕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이면엔 대중이 콘텐츠를 비평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피하주사를 맞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으니 말이다.

과거에는 상술한 비평적 방법들이 유효했지만 대중의 교양 수준이 상승하고 콘텐츠 소비 역시 보편화되었으며 인터넷 사이트에서 다양한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런 비평은 낡은 관습 이상을 넘어서기 힘들다. 특히 넷플릭스 등을 통한 구독 플랫폼의 장르 콘텐츠는 더욱 그렇다.

아마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스타워즈(스페이스 오페라)는 SF가 아니다’라는 논쟁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엄밀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공상을 펼치는 것에 불과한 스타워즈는 SF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인데, 이처럼 어설픈 비평들은 특정 콘텐츠의 요소가 미적 기준이나 구조를 통과하느냐, 통과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성공·실패를 낙인찍고 다른 작품과 구분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나 지금 플랫폼에서 장르를 구분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잘생긴 외계인이 손에서 마법을 뿜어내며 인간과 사랑을 나누다 무차별 연쇄살인마에게 죽임을 당하는 콘텐츠라면 아마 #SF #판타지 #로맨스 #스릴러로 분류되지 않을까? 이처럼 작은 요소라도 들어갔으면 그 장르라는 인식이 점차 보편화되었다. 장르는 구조의 틀이 아니라 콘텐츠에 등장하는 요소 개별의 이름이란 인식으로 변화하는 이때 이전 시대의 문법과 양식은 점차 낡은 관습으로 전락하리라.

최근 <D.P.>부터 <오징어 게임> 등 성공적인 콘텐츠가 비슷한 시기에 연달아 등장하면서 다양한 비평들이 넘쳐나지만 그중 일부는 역시나 비평가를 작품과 소비자 바깥에 둔 채 게을리 발언하고 젠체한 글들이었다. 정보값들을 해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한 채 이름 붙이는 것에만 골몰하는 그 이야기들은 콘텐츠의 버즈양을 늘려주는 홍보에 다름 아니지 않을까. 콘텐츠는 빠르게 발전하는데 비평이 게으르다면 결국 비평은 지금보다도 더 외면받고 도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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