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방에 사는가

박수정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나는 지방에 거주한다. 지방의 대학에 근무하면서 이주하였고, 지방에 산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현재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단어 중 하나는 ‘지방’이다.

박수정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박수정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30년 전 서울의 한 대학 같은 학과에서 만난 동기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왔다. 나처럼 서울(수도권 포함)에서 성장한 학생은 전체의 30%가 되지 않았다. 여행도 흔치 않았던 시절, 교과서와 지도에서만 보았던 지명들이 비로소 구체성을 띠고 다가왔다. 지방의 한 중소도시에서 온 동기에게 명절을 앞두고 “시골에 언제 가니?” 물었다가 “시골 아닌데”라는 답을 듣고 무안하고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가본 적 없고 이름만 알고 있었던 지역이었고, 대도시가 아니면 시골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대학 졸업 후 동기 대부분은 수도권에서 직장을 잡고 거주하고 있다. 고향에서 직장을 얻은 경우는 있지만 연고가 없는 지방에 자리 잡은 경우는 내가 유일하다. 지방에서 거주하는 대학 동기는 전체의 30%가 채 안 된다. 30년 만에 완전히 반대가 된 것이다.

‘지방’은 ‘지역’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범위로 묶이는 삶의 터전을 의미하지만,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과 대비되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지방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거나, 직장 때문에 이주한 사람들이다. 양쪽 모두 일터가 지방에 소재해야 한다. 그래서 ‘일자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일자리가 있다 해도 ‘정주 여건’이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거주하지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정주 여건 중 하나는 ‘학교’다. 자녀의 교육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거주지는 직장과 분리된다. 직장 근처에 주중에 머무를 임시 거처를 마련하거나 원거리 통근을 한다. 지방에서 부모와 함께 성장하였더라도 성인이 된 후에는 지방을 떠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학과 일자리 때문이다. 자녀가 없는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정주 여건 요인은 ‘문화’다. 혁신도시로 공공기관을 이전하더라도 직장이 소재한 곳과 내가 사는 곳은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대학은 지방을 떠나게 하는 요인이자 동시에 지방을 오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칼슨(Carlson)의 봉사조직 유형에 따르면, 대학은 야생조직(wild organization)에 속한다. 고객과 조직의 상호 선택이 요구되는 조직으로, 두 가지 모두가 없는 온상조직(domesticated organization)으로 분류되는 초·중등학교와 차이가 있다.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대학을 선택하며, 취업에 유리한 평가를 받는 대학이 소재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지방 안에서는 대학이 소재한 대도시나 중소도시로 가거나, 시·도의 경계를 넘어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지역에서는 대학이 있는 것 그리고 대학생의 유입은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30년 전 30%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70% 수준이다. 이처럼 대학이 보편교육이 된 상황에서, 지방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의 개념을 지방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과거에는 ‘지역에서 배출하고 중앙에 진출하여 지역의 명성을 드높인 사람’을 지역의 인재라고 생각했고, 이 관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역 명문고를 육성하려는 시도는 서울의 유수 대학 합격자를 다수 배출하려는 염원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수도권 지향의 인재 개념으로는 지역을 위한 인재를 포괄하기 어렵다. ‘지역에서 성장하고 일하고 거주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지역에 대한 이해와 애착이 있고 네트워킹을 가지며 지역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대학을 따라 지역에 자리 잡게 된 사람’도 있다. 대학 이전까지는 관계없는 지역이었지만 대학과 취업을 통해 지역민이 되는 경우다.

이러한 지역인재 개념을 나민주 교수(충북대 교육학과)는 각각 ‘전통인재’ ‘중핵인재’ ‘광의인재’로 제시한 바 있다. 전통인재는 지역을 떠나고 되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중핵인재에 대해서는 이미 주목해 왔고, 이제 광의인재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대전에 위치한 충남대학교 재학생 중 대전 소재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약 30%다. 상당수는 수도권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다. 지방에서 대학을 다닌 학생이 반드시 그곳에 남아야 할 필요는 없다. 누가 지역민이 되는가는 역시 일자리와 정주 여건에 달려 있다.

이 글은 정동칼럼에 쓰는 첫 글이다. 교육학자이기에 앞으로 교육과 지방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지방에 사람이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로 시작해 보았다.


Today`s HOT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불타는 해리포터 성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