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라

최준영 책고집 대표

별과 별자리 이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해석까지 기가 막히게 잘하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녀석의 말은 모두 지어낸 이야기이다. 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녀석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다. 가짜 이름 대신 진짜 이름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중요한 것은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들에 한층 더 친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최준영 책고집 대표

최준영 책고집 대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귀향>에 나오는 이야기다. 때로 우리는 어떤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소설을 읽기 전에 소설가를 알아야 하고, 주연배우나 감독의 연보를 모르면 감동을 느낄 수 없다는 듯 영화의 주변지식을 탐식한다. 앎에 대한 강박을 털어버리는 순간 무한한 상상의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는 걸 모른다.

앎보다 소중한 건 상상하는 것이다. 상상은 때로 은유로 아름다운 수사로 빛을 발한다. 언젠가 젖은 발로 집에 들어온 딸아이가 상상을 자극하는 말을 했다. “아빠, 저는 바다를 건너온 걸까요?” 아이의 말이 하도 예쁘고 귀여워서 젖은 발을 꾸중하는 대신, 그냥 꼬옥 안아주고 말았다. 소설에 나오는 별과 별자리 이야기가 그렇듯 중요한 것은 별의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초롱초롱한 별에 한층 더 친숙해지는 것이다. 젖은 발로 집에 들어와서 어쩌면 자신은 바다를 건너왔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아이의 은유에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순천행 기차에 올랐던 날이었다. 익산역쯤 지나던 때였다. 조용한 기차 내에서 난데없이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사랑은 산정에서 구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산을 내려가는 물의 마음이라는 것을.” 물의 마음이라니, 나로선 상상조차 못했던 말이다. 노랫말에 홀려 검색해 봤더니, 안상학의 시에, 위대권이 곡을 붙이고 강미영이 노래한 ‘이화령’이었다.

“물처럼 살고 싶어서/ 그대에게 흘러갔어요/ 그 많은 밤길 다 지나서/ 그 많은 구비 다 돌아서/ 쑥부쟁이 키 작은 그대/ 그 맑은 그곳으로 흘러 들어갔어요// 사랑은 산정에서 구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산을 내려가는 물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은/ 뒤늦은 소식 하나 안고/ 나 이제서야 물처럼 살고 싶어서// 그대에게 흘러흘러/ 흘러 흘러갔어요.”(안상학 시, ‘이화령’ 전문)

제임스 글릭의 <인포메이션(INFORMATION)>에도 인상 깊은 이야기가 나온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시체를 일러 “땅의 흙덩어리 위에 등을 대고 누워 있는 것”이라고 한다. “무서워하지 말라”를 표현하는 말은 “입까지 올라온 심장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라”이다. 언뜻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를 연상시킨다. 아, 무서움이란 심장이 입까지 올라오는 것이렷다. 춤과 리듬감만 빼어난 줄 알았던 아프리카 사람들, 알고 보니 언어적 감성도 풍부하다. 이런 말은 또 어떤가. “너의 발길이 갔던 길을 돌아오게 하라. 너의 다리가 갔던 길을 돌아오게 하라. 너의 발과 다리가 우리 마을에 서게 하라.” 북소리로 소통했던 아프리카 ‘북꾼’이 북으로 표현한 문장인데, 뜻인즉 “집으로 돌아오라”다.

찌든 현실을 사는 우리가 지향할 것은 대결과 승리, 성취와 소유의 희구가 아니다. 앎의 강박을 벗고 던지고 별을 바라보는 소년의 순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아이의 발랄한 은유는 기꺼이 칭송해야 한다. 사랑은 산정에서 구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산을 내려가는 물의 마음이라는 것도 깨달아야 한다. 아프리카 북꾼의 자연을 부르는 은유와 상징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욕망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제 정말 우리는 집으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주말 전국적으로 큰 눈이 내렸다. 실질적인 올겨울 첫눈이다. 푹푹 내린 첫눈이 우리네 마음을 축축 적셔주었다. 내년에는 첫눈 같은 새 대통령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지치고 고달픈 우리 마음 조금이나마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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