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누일 곳 없는 불안

박진웅 IT 노동자

주거불안이야말로 저출생, 노인 빈곤, 청년 자살과 함께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문제로, 안정적인 주거제도 없이는 미래를 설계하고 삶을 확장해 나가는 것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특히 최근 폭등한 주택 가격 때문에 주거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으며, 각종 대출상품과 국가지원 제도 등이 너무 복잡해서 집을 구하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주택 매수의 경우 대출비율과 금리, 주택가격, 투기과열지구, 국가 지원 제도 등 알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지레 겁이 날 정도다.

박진웅 IT 노동자

박진웅 IT 노동자

매수와 달리 전세는 이제 막 사회생활과 가정을 꾸려나가는 이들에게 주거부담을 줄여주는 좋은 제도였다. 그러나 갈수록 고도화된 사기수법, 높아진 전세대금, 복잡한 대출제도 등으로 인해 과거에 비해 전세를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심지어 전세를 구하는 이들의 전세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평생을 바친 중요한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점을 악용하여 이익을 편취하는 사태가 늘고 있으며, 전세보증보험과 같은 대책으로는 보호받을 수 있는 범위가 한정되어 전세 관련 범죄 피해도 늘고 있다.

특히 전세사기 범죄는 유형도 다양하다. 명의 도용이나 근저당권 설정과 관련된 사기, 이중 계약, 기업형의 조직적 전세사기, 심지어 대항력의 허점을 이용한 합법적인 방식을 통해 전세금을 빼먹는 방식 등 개인이 아무리 조심해도 제도적인 약점 때문에 집주인이나 중개사의 양심과 선의에 기대야 한다. 전세를 구하는 입장에선 무척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한편 월세의 경우 전세나 매수에 비해 비교적 목돈을 필요로 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지만, 더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된다. 비슷한 가격에 얼마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보장도 부족하며, 월세 비용도 전세나 매수 이자 비용에 비해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뜩이나 물가 대비 임금이 그렇게 높지 않고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매달 높은 비용의 월세를 부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산형성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친다.

이렇듯 오늘날의 주거문제는 어떤 제도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도시 집중화 현상과 주택 공급의 부족, 아파트 선호 현상 등이 겹쳐서 일어나는 문제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정적인 일자리의 수급과 저임금, 도심 인프라와 비도심 인프라의 환경 차이도 큰 영향을 미친다. 즉, 주거문제는 단순히 집값의 문제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사회적 문제들을 엮어 가격을 결정하다 보니 관련 제도 역시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복합적인 사회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욕구와 달리, 이러한 문제는 사실 한 가지로 깔끔하게 해결될 수는 없다. 모두가 다 이익을 볼 수 있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가 된다. 개인적으로 주거문제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은 전세와 관련된 각종 범죄에 대한 보완책을 세우는 것이다. 전세보증보험의 보장범위의 확대나, 전세계약 시 즉시 대항력을 갖게 하는 것, 중개사와 집주인이 의무적으로 제공할 정보를 늘리는 것 등을 통해 적어도 집을 구하는 데 있어서 계약에 대한 복잡성과 위험도를 낮추어 좀 더 원활하고 안전한 거래가 이뤄지게 해야 한다.

필자 역시 도시의 주거문제로 고통받는 청년으로서, 집값 안정화와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가 나아지길 바라고 있다. 매수나 전세를 위해 큰돈을 빌려 겨우 집을 구하고, 매달 이자에 허덕이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렇듯 평범한 이들에게 주거문제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와 같기에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의 확대나 인프라 개선이, 단기적으로는 안전한 계약을 위한 제도개선과 지원정책을 늘리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부디 새해에는 최근 주거문제 해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제도와 정책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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