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인권정책을 찾습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지난주 주목할 만한 조사가 있었다. 한국인권학회에서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문재인 정부의 인권정책을 평가해달라고 했고, 인권단체들의 연대체인 ‘인권운동더하기’에서는 인권활동가들에게 문재인 정부의 인권 현실을 물었다. 인권학회 조사에서는 정부의 인권정책 성과가 미흡하다는 응답이 63.1%, 정부의 인권정책 전문성이 미흡하다는 응답이 58.4%로 나타났다. 인권운동더하기 조사에서는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밝힌 인권 과제들을 제시하고 부족했던 것을 선정했다. 여기에는 코로나19 방역과 집회의 자유 제한 및 감시 강화, 코로나19와 시설 문제, 국가보안법 철폐, 차별금지법, 고 변희수 하사 싸움, 페미니즘 백래시, ‘가짜난민’ 논란, 사법농단 사태, 반복된 노동자 사망사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합헌 결정,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플랫폼 노동 등 불안정 노동의 확산, 현장실습생들의 죽음 등이 꼽혔다. “촛불에 담긴 열망을 무너뜨리며 공허한 말잔치에 그쳤을 뿐”이라는 결론이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2017년으로 돌아가보자. 인권에 관해서도 문재인 정부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들이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퇴행한 의제였기에 문재인 정부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야심차게 내놓은 국정과제에서는 인권정책의 청사진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정권 초기부터 민감한 인권 의제들은 하나둘 외면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인권 의제인 ‘차별’ 문제에 대해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인권 문제의 중심은 공권력에 의한 자유권 침해에서 사인에 의한 차별 문제로 옮겨갔고, 시민의 인식 수준도 크게 높아졌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만 162개 단체가 모여 활동하고 있고,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차별금지법 찬성 의견이 3분의 2 넘게 나온다. 시민들의 수준은 이렇게 높아졌는데, 정부의 대응은 지지부진했다. 차별금지법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법 없이도 할 수 있는 차별금지 정책은 차고 넘친다. 그러다가 이달 들어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임기가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인권문제 중심 차별로 변했는데
문재인 정부 대응은 지지부진
인권의제들은 쟁점조차 안 되고
정책 비전 논하는 건 언감생심
인권정책 실종은 현재진행형

그렇다고 구 시대의 인권 과제들이 속 시원히 해결된 것도 아니다. 군대에서는 충격적인 성폭력 실태가 드러났고, 성소수자 차별로 인한 비극적인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군사법제도 개혁이나 군인권보호제도 개혁은 어정쩡한 수준에서 마무리되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독자적 인권 의제로 떠올랐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가 정말 컸다. 정파적 이익을 떠나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규칙이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가짜뉴스 강경 대응, 대통령 모욕죄 고소,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 납득하기 어려운 조치들이 이어졌고, 정작 규제가 필요한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은 손도 대지 못했다. 그사이 보수세력이 ‘표현의 자유 투사’로 변신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정부에서 통과되었던 난민법은 예멘 난민 사건, 아프가니스탄 난민 사건 등을 거치면서 입법 취지가 무색해졌다. 정부는 이주자, 난민, 소수종교에 대한 혐오의 확산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다행히 시민사회의 투쟁이 일궈낸 소중한 성과들이 있었다. 여러 지방자치단체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인권조례를 제정하고 인권정책체제를 갖추어 나갔고, 대학원생 인권 침해에 대한 문제제기는 대학인권센터 설치를 법제화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학생 인권에 대한 관심은 각 지자체의 학생인권조례를 넘어 학생인권법안 발의로 이어졌다. 인권과 관련한 연구 성과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인권학회와 인권법학회가 창립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에 인권을 주제로 한 연구소도 늘었다. 각 지자체와 공공기관, 민간기관에서 실시되는 인권교육 건수도 크게 늘었다. 스포츠인과 문화예술인들의 투쟁은 스포츠인과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의 개선으로 이어졌고, 미투운동은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했고, 관련 법 개정과 제도 개선을 이끌어냈다.

다음 정부에서는 돌파구가 생길까? 안타깝게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차별금지법만 놓고 보면, 적극 찬성 입장을 밝힌 심상정, 김재연, 오준호 후보가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아직도 사회적 합의 타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인권운동가들이 지적한 의제들은 쟁점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인권정책의 비전을 논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인권정책의 실종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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