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재능엔 독이 있다

박선화 한신대 교수

“태희 언니는 예수님 같았다. 지나가면 주위 사람들이 홍해 갈라지듯 갈라졌다.” 미인대회 출신 배우 이하늬씨가 대학교 때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한 김태희씨에 대해 했던 이야기다. 세상엔 그런 이들이 있다. 등장만으로 공기가 달라지고, 소소한 밀당을 즐기던 보통 사람의 일상에 긴장감을 드리우며 모든 이의 관심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압도적인 존재들. 요즘 말로 외모 천재들.

박선화 한신대 교수

박선화 한신대 교수

절세미녀의 평범한 에피소드는 내세엔 반드시 저런 얼굴로 태어나 세상 거만하게 살아보리라 다짐하게 만드는 무수한 이들의 판타지다. 한데 나이가 들며 깨달은 것이 있다. 인간사의 만능 열쇠나 다름없어 보이는 이 특별한 신의 선물엔 꽤 까다로운 사용 조건이 따른다는 것이다. 여성 폭력 피해자 중에는 평균보다 미모인 분들도 많다고 한다. 미모가 인생을 능동적으로 즐길 수 있는 강점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위험한 환경에 쉽게 노출되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삶으로 휘둘리게 되는 경우도 많아서다. ‘미인박복, 미인박명’ 같은 고사성어가 있는 이유일 것이다. 반대로 역사와 사회를 뒤흔드는 사건의 배후엔 출중한 외모를 공격과 살상용으로 이용한 남녀상열지사가 부지기수다. 피해자가 되건 가해자가 되건 빛나는 은총에는 자신을 추스르는 힘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함을 각성시키는데, 이는 미모에 국한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SNS와 미디어가 갈수록 양극화되고 혐오와 조롱도 일상화되고 있다. 타고난 언변을 무기로 인기와 명성을 얻은 이들이 넘쳐나지만, 이러한 재능의 상당수가 사람을 살리기보다 죽이는 일에 더 많이 쓰이고 있어서다. 드라마 <지옥>에 나오는 ‘화살촉’ 역시 독사의 혀로 악을 구현하는 인물이다. 미모든 지력이든 체력이든 선동능력이든 모든 재능과 탁월함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부끄러운 것은 그런 이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다.

맥락을 파악하는 능력과 언변이 좋다는 이야기를 늘 들어왔다.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되지만 글을 매개로 하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미모만큼 효과가 좋다. 가끔 올리는 사회적 논평에는 사이다라는 댓글이 붙고 강력할수록 팔로어도 늘어난다. 우연히 선물받은 재능의 밝은 면이지만 위험한 면도 있음을 알고 있다. 철없던 시절 종종 가족들에게 들은 얘기가 있어서다. “네 말에 나쁜 의도가 없는 것도 알고 틀린 것도 없다. 그렇지만 너의 지적을 듣고 나면 많이 아프고 가끔은 무섭기도 해.”

재능이란 그런 것 같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특정 분야에서 상황과 내용을 빠르게 숙지하고 손쉽게 활용·설득하는 능력. 하지만 그로 인해 오만해지고 타인이 느낄 당혹스러움과 상처에 누구보다 무지하고 실수하기 쉬운 가능성. 팬덤에 도취되어 빛나는 재능을 낭비하는 미디어의 빌런들, 철들지 않은 권력자들을 반면교사로 삼으며, 나는 어떤 실수를 하며 살아왔는지를 조금씩 깨달아 간다.

나의 허점보다 남의 허점을 더욱 날카롭게 포착하는 저격 본능과, 잘못될 수 있는 생각도 그럴듯한 논리로 윤색하는 능력을 더 자주 점검한다. 호흡을 고르면 참을 수 있는 말, 시간이 지나면 후회할 말을 뱉지 않기 위해 빈도, 속도, 수위를 조절하려 애써본다. 내가 나다울 수 있고 매력을 발산하기 가장 쉬운 재능을 묵히고 절제하려는 행위는 극한의 다이어트처럼 실패를 반복하지만 계속 노력하려고 한다.

민주사회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다. 풍자와 해학은 더욱 좋다. 그러나 말이 비수가 되어 급소를 타격하는 재능을 선물받은 이들이라면, 자신을 제어하는 노력과 성찰도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타인의 민낯을 드러낸다고 생각한 재치있는 풍자는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는 부메랑일 뿐이다. 어떠한 재능도 덕을 넘어서면 독이 되고, 사이다는 물을 대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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