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안의 타자, 향화인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지금과 비교한다면 전근대는 기술적인 이유로나 이념적 이유로 현재보다 폐쇄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교류나 이주, 망명이 없지는 않았다. 조선의 경우에도 상당히 많은 외국인이 귀화해서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에서는 귀화인을 일반적으로 ‘향화인(向化人)’이라고 불렀는데 향화란 교화를 내포하는 말로, 외국인이 교화를 통해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규상의 <병세재언록>에 따르면 18세기 조선에는 전국적으로 귀화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뿐 아니라 충청도 홍성 지역처럼 바닷가의 한 면이 전부 귀화촌인 경우도 있었다.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조선에서는 귀화한 외국인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향화인이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원칙적으로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들은 법적·사회적으로 외국인이 아닌 조선인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실제로 조선은 향화인들이 조선에 정착할 수 있도록 면세나 관직 수여 등 각종 법적·제도적 조처를 마련하였고, 조선인과의 통혼도 장려하였다.

그러나 법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들이 실제로 조선인들과 구분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 호적자료를 보면 이들이 정착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외국인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상당수의 여진족과 왜인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던 울산 지역의 호적을 보면 1, 2세대뿐 아니라 그 이후 세대에 대해서도 ‘향화’ 또는 투항한 왜인이라는 의미의 ‘항왜(降倭)’로 표시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모여서 촌락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선인들과의 차이가 지워지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조선에서 향화란 역설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798년 정조는 중국에서 귀화한 한인들과 그렇지 않은 외국인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향화라고 명명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는 한인들을 ‘황조인(皇朝人)’, 즉 명나라의 후손으로 부르고 일반 향화인들과 다르게 대우할 것을 명령하는데, 이는 향화가 당시 귀화한 외국인을 폄하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는 방증이 된다.

성호 이익은 이러한 차별이 조선에 심각한 정치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귀화인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 전쟁과 같은 위기 시에 내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귀화인이 조선인과 섞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조선인들이 그들을 천하게 여겨 차별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귀화한 외국인을 ‘우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조선인들의 태도가 결과적으로 이들과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전쟁이나 내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외국인을 ‘우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익의 주장은 보편적 인류애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익은 조선인과 외국인이 섞여 살다 보면 자연히 하나가 될 것이라는 당대인들의 생각에 대해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는 외양으로, 언어로, 출신지로, 문화와 관습으로 ‘우리’는 ‘타자’를 구분하고 그에 기초해 정체성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이’가 차별과 적대감이 되지 않으려면 개인과 공동체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타자에 대한 차별과 적대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배타적 태도와 편견을 갖고 있을 때 우리는 정확한 정보와 객관적 분석 없이 쉽게 타자를 규정하고 판단하게 되는데, 이는 국내외의 급변하는 정세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볼 때 18세기 당대에 외국의 서적을 가장 많이 모으고 읽었다고 알려진 이익이 외국인을 경계하면서도 그들을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은 자타의 구분, 정치공동체의 안정과 이익의 관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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